여행보다 잠이, 편안한 집이 더 좋았던 나에게 여행은 이전까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여행 장소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학기를 마친 후 부랴부랴 길을 나서야 했다. 게으른 나에게 여행은 마냥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낯선 이국땅은 한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난 이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여행이 끝난지 두 달이 지나고 학기가 한창인 지금이지만 다시 그 꿈같은 시간으로 돌아가서 20여일 간의 여행이 어땠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말로만 들었던 동유럽의 멋진 풍경과 수많은 볼거리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정적인 줄로만 알았던 부다페스트는 예상보다 볼 것, 먹을 것, 갈 곳이 많았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부다페스트 여행기를 시작한다.   


▲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왕국의 언덕
▲ 헝가리를 세운 7명의 마자르족 영웅을 상징하는 어부의 요새
역사가 흐르는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는 도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역사적 건물이 많은 서쪽 부다 지구와 상공업 지구인 동쪽의 페스트 지구, 이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여행지 곳곳에 헝가리의 역사가 담기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왕궁의 언덕은 부다페스트를 부다페스트답게 만들어주는 관광 명소였다. 헝가리의 왕들이 거주했던 부다 왕궁,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등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왕궁 근처 대통령궁에서는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펼쳐지고 있었다. 발맞춰 나아가는 근위병들의 모습에 감탄하다가 부다 왕궁은 13세기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벽은 2차 대전 중 박힌 탄환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니 고깔 모양의 은회색 탑 7개가 있는 어부의 요새가 보였다. 어부의 요새는 높은 언덕에 자리해 있어, 그곳에서 나는 도나우 강과 부다페스트 시내 그리고 세체니 다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 지구의 부호 세체니 백작이 페스트 지구에 살고 있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만들었다는 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세체니 다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괜히 마음이 시큰해졌다.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버스킹을 하거나 기념품, 음료, 음식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아저씨는 싸이의 말춤을 추면서 어설픈 한국어로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 중 ‘Hot wine’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한국돈 약 3000원 정도를 주고 산 Hot wine은 달달하면서 과일 향이 풍겨나와 맛이 좋았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악사들의 잔잔한 선율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을 눈 앞에 두고 마시는 와인은 여행의 낭만을 더했다. 부다페스트의 역사와 멋진 광경에 취한 듯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 12월 31일,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세체니 다리의 낮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외국의 새해 맞이

오랜 유물들이 많은 부다 지구와 달리 페스트 지구는 오랜 기간동안 서민들의 삶터 역할을 해왔던 만큼 정겨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헝가리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번화가인 바치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나라의 명동과 분위기가 비슷한 바치거리에는 기념품 가게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브랜드 가게들이 많았다. 바치거리의 12월 31일은 정말 엄청났다. “Happy New year” 사람들은 부부젤라를 불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인사를 건넸다. 부부젤라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부부젤라를 불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마치 즐길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우리나라 온 국민이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 그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12월 31일 11시 30분, 새해를 30분 남짓 앞두고 우리는 숙소 근처 옥토곤(Oktogon)역으로 나왔다. 옥토곤역 주위는 관광명소도 아니고 그냥 보통 주거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치거리만큼이나 흥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거리에서 가발을 쓰고 부부젤라를 불어대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맥주나 와인을 들고 있었다. 우리도 그 분위기에 취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부젤라를 불었고 길거리의 외국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친구가 됐다. “5,4,3,2,1 Happy New Year.”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12시 정각에 맞춰 다같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다. 나도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하염없이 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새해 소원을 빌었다. 12시 정각을 넘기고도 30여분 간이나 폭죽 불꽃은 끊이지 않았다. 항상 집에서 TV로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조용하게 새해맞이를 했던 나에게 외국에서 낯선 이들과의 새해맞이는 색다른 경험이 됐다.

▲ 세체니 다리의 밤
▲ 밤이 돼 더욱 번쩍이는 국회의사당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아름다운 야경

파리의 센느강, 프라하의 야경과 함께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힌다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부다페스트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을 올랐다. 내심 기대를 하다가도 ‘야경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언덕에 서서 야경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낮의 부다페스트와는 확실히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밤이 되자 세체니 다리부터 국회의사당까지 부다페스트의 모든 건물들은 제각각 자기의 아름다움을 뽐내듯 빛을 냈고 그 빛은 도나우 강 물결에 어려 더욱 화려해졌다.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도나우 강 주변의 야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사진은 실물만 못하다는 생각에 땅에 앉아 이 광경을 눈에 다 담아가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도나우 강을 바라봤다. 여행이 끝나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서서히 잊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서글퍼졌다. 멍하니 앉아 도나우 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 나중에 다시 와서 이곳에서 느꼈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줘야지.

오후 4시만 되면 어두워지는 기후 덕분에 우리는 5시에도 겔레르트 언덕에서 야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을 좀 더 가까이에서 즐기고 싶어 도나우 강변을 따라 순환하는 유람선을 탔다. 쌀쌀한 바람이 계속 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좀 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체니 다리와 에르제베트 다리를 지나갈 때마다 매 순간 황홀함을 느꼈다. 가까이에서 보는 국회의사당은 조명에 반짝여 더욱 웅장해 보였다. 동료 기자는 “헝가리 정치인들은 이런 국회에서 정치할 수 있어 좋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돌이켜보면 부다페스트의 많은 연인들이 왜 그렇게 거리에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낭만과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막연함으로 시작된 부다페스트 여행은 나에게 사랑과 정과 추억을 줬다. 아름다운 도시 부다페스트.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가 기분 좋은 설렘을 만끽하고 싶다.


글_ 김주영 객원기자 kjoo0e@uos.ac.kr
사진_ 이철규 기자 279@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