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차는 맛은 뭐니 뭐니 해도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권력은 자신 혹은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준 자의 가치 지향을 타인에게 강제하는 매체로서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가령 국민 개개인의 자율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탄생한 국가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행사될 때 정당성을 가진다.

위험한 것은 정당화되지 않은 권력이 완장을 차는 경우다.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권력이 강제력을 행사할 때 비극이 발생한다. 지난 시절 우리가 경험한 군사독재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우리 사회는 ‘병영사회’로 불렸으며 우리 문화는 ‘완장문화’였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모든 규범이 말 그대로 ‘군기(軍紀)’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민주화를 쟁취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권력을 가장 경계해야 할 학문의 전당에 군사독재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얼마 전 한 여대 체육과가 신입생들에게 말투, 복장, 외모 등을 강제로 규제하는 등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 잡기로 구설수에 올랐고 우리 대학 토목공학과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생, 기성 언론에까지 보도되어 망신살이 뻗친 적 있다.

특정 집단의 ‘고유문화’니 ‘전통문화’니 하는 식으로 군기를 합리화하기엔 우리 사회와 대학이 너무 발전했다. 나이와 학번은 결코 완장이 될 수 없으며, 설령 된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거기에 자발적으로 권력을 부여한 적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는 세월 아쉬어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구태의연한 군기확립은 결코 되돌려선 안될 문화다. 비판적 지성의 전당이 완장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을 경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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