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시간을 멈추게 한다거나 돌아가고 싶은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한다. 드라마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시간여행자들의 모습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혹시라도 나에게 저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 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능력은 초능력이며 따라 하려 해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러나 우리 같은 범(凡)인에게도 시간을 간직하고, 시간을 여행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시간여행자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그 첫 장을 펼쳐보자.

▲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발송된다.

첫 번째 시간여행 : 1년 전, 그 시간으로 돌아가다

1년 후의 나에게 1년 전의 내가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까먹을 즈음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를 꺼내보니 어쩐지 쑥스럽지만 이 편지를 보냈던, 뭔가를 다짐했던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격려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느린우체통의 매력이다. 느린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그 편지는 1년 뒤에 배송된다. 김선미 우정총국 직원은 “1년 전 그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고 뜻 깊었다며 다시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1년 뒤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 있는 느린우체통 옆에서 편지를 쓰고 있던 김민진(29)씨는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1년 뒤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있었어요. 1년 뒤에 남자친구와 헤어져 있다면 그 당시를 하나의 추억으로 흘려보낼 수 있겠고, 계속 만나고 있다면 편지를 전해주며 사이가 더 돈독해 지겠죠”라고 말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방법으로는 시크릿캡슐이 있다. 시크릿 캡슐은 타임캡슐을 약간 변형한 것으로 캡슐 안에 있는 종이에 내용을 적은 후 유리병 안에 넣어놓는 방식으로 돼 있다. 이 캡슐은 타임캡슐과 비슷하게 시크릿캡슐 하우스로 선정된 카페에서 1년간 보관이 가능하다. 시크릿캡슐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희균(43)씨는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오래 간직했으면 하는 것들을 내 머릿속이 아니라 다른 곳에 저장할 수 있다는 게 캡슐의 매력이에요”라고 말했다. 시크릿캡슐 하우스를 찾은 하지인(23)씨는 “같이 대외활동을 하던 사람들끼리 대외활동이 끝나도 계속 보자는 취지로 시크릿캡슐 하우스를 찾았어요. 이걸 찾기 위해서라도 1년 뒤에 다시 보자는 것이었죠. 캡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이어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시크릿 캡슐에 자신이 하고픈 말을 담는다.

두 번째 시간여행 : 조금은 뻔한, 그러나 소중한 여행

타임캡슐, 느린우체통 등 거창한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시간을 담는 사람들이 있다. 향수를 통해 시간을 간직한다는 정영주(19)씨는 “공연을 보는 게 제 취미에요. 공연을 봤던 그 순간들을 나중에 다시 떠올리고 싶어서 공연을 볼 때마다 그 공연과 비슷한 이미지의 향수를 뿌리고 나가요”라고 말했다. 공연을 보는 날이 아닌 날에 특정 향수를 뿌리면 그 향수를 뿌리고 갔던 특정 공연을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어리’를 통해서도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방기쁨(성신여대 3)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이어리를 쓰고 있어요. 옛날에 쓴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했다. 특히 여행 갔을 때의 일기를 다시 펴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녀는 “혼자 여행을 다니며 많은 걸 반성하고 다짐했던 적이 있어요. 가끔 힘들면 그때 쓴 일기들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다시 다잡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스케치를 하며 시간을 간직하는 사람, 특정 음악을 들으며 소중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 사진을 찍으며 그 시간을 회상하는 사람 등 시간을 간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뻔한, 그리고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개개인에게는 가장 소중한,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들일 것이다. 윤근영(서강대 4)씨는 “저는 음악을 통해 시간을 활용해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간직하지만 소중한 시간들을 바로바로 간직해놓고 떠올릴 수 있어서 편리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 서울도서관에 위치한 메모리 박스. 기억 수집가와 기억 제공자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세 번째 시간여행 : 재구성된 시간 속으로

지금까지 개개인의 시간여행 방법을 알아봤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겪지 않은, 혹은 겪었더라도 잘 기억나지 않는 재구성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3년 전 일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게 된 추억을 함께 되찾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미래에의 기억>은 구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다. 지진 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지진 이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일본 지도 안에 촘촘히 박혀 있다. 이곳에 게시된 사진에는 개개인의 사연이 담겨있다. 귀여운 아기 사진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8개월 된 아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등 일본 대지진을 겪은 생존자들의 아픔이 이곳에 게시된 사진을 통해 드러난다.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올렸을지 저로서는 짐작도 되질 않아요. 대지진이 일어난지 한참 지났지만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겠지요”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런 기억 수집의 현장은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작년부터 시작된 ‘메모리인 서울 프로젝트’는 다양한 서울 사람들 개개인이 보내온 삶의 기억을 녹음을 통해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들려줘 서로 공감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의 기억을 들으면서 모으는 작업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을 수집하는 ‘기억수집가’가 이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들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억과 아이들의 기억을 공유해주고 싶어 지원을 하게 됐다는 기억수집가 박진옥(45)씨는 “사람들의 기억을 듣다 보면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다 다르고 흥미로워요. 모든 사람의 기억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거죠”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들은 서울도서관에 있는 스튜디오 녹음 부스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듣거나, 혹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박진옥 씨는 “제가 모으는 이야기들을 다 재구성해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요. 그 시간 속으로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문화재단 조수연 씨는 “이 프로젝트가 캠페인으로 확산이 돼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과거 속에 사는 편이다. 내 생애 대부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작가 허브 캐언의 말이다. 이는 사람들이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다시 올 수 없기에 아름다운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지칠 때쯤 한 번씩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 가지 물건들을 통해 내가 속해있던 아름다운 과거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혹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길 바라며 이 안내서를 닫는다.

글·사진_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