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두드리는 순간순간마다 여행을 했던 그 당시가 생각난다. 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크로아티아 내전 등 아프고 괴로운 역사를 가진 크로아티아. 하지만 그때의 상처는 온데간데없어 보이고, 사람들 모두 여유롭고 쾌활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아드리아 해의 푸른 물결, 그리고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그 상처를 씻겨줬으리라. 나 역시 푸른 바다의 힘을 빌려 그동안의 노곤함과 지친 마음을 깨끗이 씻어냈다. 크로아티아에서 보낸 5일간의 여정은 급박했던, 항상 빨라야만 했던 내 삶에 여유라는 가치를 불어넣어줬다. 잠깐 동안의 옳은 방황, 그리고 바람직한 일탈. 크로아티아에서의 여행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편집자주-


▲ 노을이 지는 스플리트의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크로아티아!” 헝가리에서부터 6시간 반 동안 달려온 끝에 자그레브에 도착하자마자 들뜬 기분으로 외쳤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느라 피곤했던 동기들은 모두 잠이 들었지만, 나는 들뜬 마음에 가이드북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어디를 가면 좋을지 찾고 있었다. 모두를 깨운 뒤 기차에서 내렸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크로아티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가지고 있던 짐, 마음의 짐 모두를 숙소에 내려놓고 발걸음을 뗐다. ‘너의 손가락을 바다에 담그면 세상은 너의 것이 된다’는 중세 두브로브니크의 속담처럼 그렇게 나는 크로아티아에 발을 담갔고, 크로아티아는 나의 것이 됐다.


상처 많은 도시, 자그레브

자그레브에 도착한 1월 1일. 우리가 그들의 공휴일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리가 휑했다. 큰 동상 주위에 앉은 수 십 마리의 비둘기가 우릴 반길 뿐이었다. 조금 쓸쓸했지만 이도 잠시, 우리는 아름답게 재구성된 신시가지의 녹색 편자를 걸으며 크로아티아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좀 더 걷다보니 근엄하게 서있는, 그러나 어딘가 아파보이는 성모승천 대성당의 모습이 보였다. 관광객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그 위대한 풍채가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듯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그냥 눈에 좀 더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멀찍이 서서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니 성당의 꼭대기가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딘가 아파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왜 공사 중인지 궁금해 가이드북을 펼쳐 찾아보니 침공, 대지진, 벼락 등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공사 중이란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보이지만, 조금은 위축돼있는 성당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한참을 성당에 있은 후, 볼거리가 많다는 언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성마르크 성당이었다. 마치 레고로 성당 지붕을 만든 듯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왠지 저기에 슈퍼마리오가 살고 있을 것 같아”라고 혼잣말을 하니 동료 기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성당이 또 있을까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기대와는 조금 달랐던, 그러나 강렬했던 크로아티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 견고하게 쌓인 성벽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 아기자기한 성 마르크 성당의 모습.

저무는 노을과 바다의 추억, 스플리트

스플리트에 도착을 하니 “그래! 이게 바로 크로아티아지!”라는 말이 바로 나왔다. 푸른 바다와 우거진 나무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의 크로아티아가 눈앞에 펼쳐졌다.

숙소가 어디인지 몰라 길을 헤매는 우리에게 크로아티아 꼬마아이가 다가와 길을 안내해줬다. 그 이후 내가 갖게 된 크로아티아인들의 이미지는 “저를 따라오세요. 어딘지 알려 드릴게요”라는 아이의 말 하나가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다 친절해’라는 생각을 크로아티아 여행 내내 하게 됐고, 이는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 여행에서도 이어졌다.

긴 여정에 지쳤지만 우리는 숙소에 가방만 놓고 바로 나왔다. 스플리트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이었다. 그레고리우스 닌은 크로아티아인이 모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투쟁한 인물로, 크로아티아에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편 이 동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부위는 엄지발가락이다. 엄지발가락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 때문에 엄지발가락만 황금색으로 반들반들 빛났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그의 발에 응집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이라 생각돼 내 소원 역시 이뤄질 거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나 역시 엄지발가락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었다.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바로 앞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디오클레티안 궁전이 위치하고 있었다. 중세시대를 그대로 빼다 박은 궁전에는 광장, 대성당, 신전, 아파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궁전이 완공된 해에 생을 마감해 궁전에서 산 적이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지하궁전이었다. 궁전이라는 관광지와 주민들의 상권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며 탈출구를 찾던 그 때 주황색 빛이 어슴푸레 들어와 눈을 간지럽혔다. 마냥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던 바다에 해가 저물면서 주황빛 노을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던 것이다. 노을에 매료된 우리는 궁전에서 나와 사진을 찍고 또 찍고,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노력했다.

▲ 한 소녀가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엄지발가락에 손을대고 소원을 빌고 있다.
 

치유의 도시,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여행은 그 곳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됐다.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듯 아드리아 해가 2~3시간 동안 계속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빠져 나갔다를 반복했다.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는 신호는 빨간 지붕들이 알려준다. 듬성듬성 들어서있던 빨간 지붕들은 두브로브니크에 가까워지자 빼곡히, 하지만 아름답게 땅을 수놓았다. 도착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구시가지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돌기 전, 구시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곳은 스르지산. 오밀조밀 모여 있는 빨간 지붕들이 마치 손으로 집을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한참을 구경하다 시선을 잠깐 옮겼더니 커다란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왜 산에다 이렇게 커다란 십자가를 세웠는지 궁금하던 찰나 동료기자가 “이 십자가는 내전 당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라며 그 당시의 참혹함을 설명해줬다. 그들의 슬픈 마음을 파도가 어루만져주길 기대하며 구시가로 내려왔다.

광장, 성당, 수도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구시가지지만 그 중 압권은 단연 성벽이었다.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은 현재 관광지가 됐지만, 견고한 그 모습에서 이들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계단을 한참 올라 성벽 위로 올라가니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아드리아 해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선 자리에서 20분을 멈춰 바다만 쳐다봤다. 사람들이 왜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지 알 것 같았다. 성벽 위를 따라 걷는 길은 2km 남짓한 꽤 먼 거리여서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힘들 때마다 바다가 밀려와 치유해주고, 지칠 때마다 바다가 말을 걸어주었다. 빨간 지붕과 바다, 그리고 숲. 빛의 3원색이라 불리는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초록색의 조화는 그 어떤 빛보다도 눈부셨고 아름다웠다. 빛을 계속 쐬면 잔상이 남듯, 내 눈에서 역시 두브로브니크의 잔상이 떠나질 않았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11시간 동안, 솔직히 말하면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에는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숨겨진 보물들이 정말 많다. 요정들이 살고 있다는 플리트비체, 파도가 노래를 읊조리는 자다르, 난쟁이들이 백설공주를 모시고 사는 마을 라스토케 등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들이 나를 계속 붙잡았다. 그뿐이랴, 가봤던 곳도 좀 더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흐르기 때문에 이야기인 것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이야기들은 결국 내가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될 이야기로 계속 흘러갈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크로아티아에 온 몸을 담갔고, 크로아티아는 나의 것이 됐기 때문이다!


글·사진_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사진_ 이철규 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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