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따뜻해진 요즘 토요일 오전에는 올해 6살이 된 아들이 수영을 배우러 간다.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 같이 수영하는 또래 아이들이 제법 물을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들도 저 정도는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나의 짧은 기대는 수영장 밖에서 물이 무섭다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이내 산산이 무너졌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내심 꽤 속이 상하기도 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수반한다. 10여 년 전부터 해오던 강의임에도 매일 강의실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오늘 내가 원하는 만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잘 이해할까? 그렇지 못하면 속상하지 않을까? 강의실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혹여 넘어지면 어쩌지? 등등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나와 같이 교실로 간다. 그러나 막상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두려움들은 슬금슬금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면 그냥 학생들에게 더 많이 가르쳐 주고 이해시켜 줘야지 하는 생각들에 책임감에 어느덧 나를 맡기게 된다. 내가 원하는 만큼은 그리고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잘 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의 노예는 아니다.

우리 시대에 대학생들이 새롭게 당면하게 될 중차대한 과제는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장차 개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도 결코 만만치 않은데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미래에 맞닥뜨리게 될 과제들을 능동적으로 해결해 가는데 일조해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된 남북한 통일도 상황에 따라 더 이상 편익과 비용을 따져가며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속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FTA나 DDA로 대표되는 개방화와 글로벌화의 흐름에서 우리만 예외일 수는 없다. 새롭게 시작될 이러한 일들에 대해 당연히 누구나 두려움을 가진다. 갑자기 남북한 통일이 이뤄지면 사회적 혼란이 너무 크지 않을까? 우리 경제를 개방해서 외국 기업들이 우리시장을 마구 휘젓고 교란시키지는 않을까? 그런 두려움들을 단순히 기우로 치부하지는 말자.

그렇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통일에 따른 변화가 불안할 수 있지만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이끌 수도 있다. 개방을 통해 불합리한 규제와 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맞출 수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끌 힘이 청년에게는 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도 말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라. 그러면 그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지난 주말에도 아들은 아직 혼자서 수영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제 물이 무섭지 않은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속에서 물장구도 치곤 한다. 스스로 킥을 하면서 헤엄치는 다른 애들에 비하면 많이 쳐지지만 나는 언젠가 잘난 척하면서 수영할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세상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도 그려보고 싶다.

성한경(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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