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의 빼곡한 빌딩숲에 둘러싸인 옛 건축물. 서울의 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섞여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서울의 도시풍경은 산업화 시대를 빠르게 지나온 한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저기 비집고 들어선 건물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인상을 흐릿하게 만든다. 빨간 지붕이나 고풍스런 건물들이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유럽의 대도시들과는 다른 그저 그런 현대 도시의 모습이다. 왜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아름답게 기억되지 못할까. 이 책은 그 이유로 건축의 부재를 꼽는다. 우리가 보는 수많은 건물들은 건축의 결과가 아닌 ‘건설’의 결과라는 것이다.

건축은 역사와 사회의 맥락을 아우르는 철학적 고민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 논리에만 의존해 도시를 건설했다. 건축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다 보니 ‘건축은 이래야 한다’는 공론 또한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 공유 규범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산업화를 좇는 위로부터의 개발이 성급하게 진행됐다. 건설업자들은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건물들을 무작정 쌓아 올렸다.

그 결과 서울 도심에 자리한 건물들은 1970년대의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뒤죽박죽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효율성에만 철저히 기댄 도시 개발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제2롯데월드 같은 건물들을 양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오로지 공간을 ‘채우기 위해’ 도심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한국의 대다수 건물들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실패작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실패작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건축이 필요한지, 또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한빛 수습기자 hanbitive@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