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는 프라하, 부다페스트, 빈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도시들을 거쳐 도나우 강을 따라 흘러왔다. 부다페스트의 신년 폭죽 소리와 크로아티아의 파도소리가 마음속에서 희미해질 즈음 도착한 오스트리아 빈. 그 나라에선 쉴 새 없이 음악이 흘렀다. ‘나도 이 거리에서 등에 진 기타를 꺼내 연주해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온 도시를 걸어 다녔다. 발걸음을 떼는 자리마다 음표가 돋아나는 길, 오스트리아의 거리에서는 지금도 악사들이 춤추고 있을까.

▲ 암호프광장에서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터트리며 놀고 있다.

 
경쾌한 소리가 거리 악사의 기타 현에서 튕겨 나온다. 선율이 시작되는 곳은 빈의 ‘암호프(Am Hof)’ 광장. 여행 중 대부분의 날에 하늘이 흐렸는데, 모처럼 화창한 날씨다. 따뜻한 햇살 아래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들과 비눗방울을 만드는 아이들이 광장 잔디 위에서 함께 뛰어다닌다. 구석에서 이 풍경을 응시하며 기타를 연주하는 악사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유럽의 것인지 북미의 것인지 모를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동전 한 닢을 악사 발치에 놓인 바구니에 던지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다. 오스트리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관광객 뿐 아니라 주민들도 많이 찾아 북새통을 이루는 암호프 광장은 빈의 중심을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 도나우 강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세계 명문 빈 대학이 있고, 오른쪽에는 국립극장과 슈테판 성당, 모차르트 하우스가 위치한 케른트너 거리가 펼쳐져 있다.

▲ 연주하다 거리에서 쫓겨난 관광객 버스커

 
‘케른트너 거리로 가자’,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가장 호화로운 거리라 볼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빈에 왔다면 모차르트 한 번 안 보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호화로운 거리라 하니 모차르트가 빈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많은 돈과 명성과 명예를 원한다!” 이 말대로 그는 엄청난 부를 누렸다. 그가 20대였던 1780년에 모차르트는 초등학교 교사의 30배정도 연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빈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살았다. 대체 어떤 집일까 궁금해 케른트너 거리 한복판에 있는 ‘모차르트 하우스’로 바로 갔다.

모차르트 하우스는 슈테판 대성당의 오른쪽 모퉁이에 있다. 그곳에 있는 작은 굴을 지나면 바로 앞에 푸른 벽이 눈에 띄는 모차르트 하우스가 나온다. 건물은 빈의 여느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와 비슷한 외관이다. 아마 호화롭다는 말은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절에나 가능했겠지 싶을 정도로 평범했다. 아무렴 어떤가.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가벼운 기분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모차르트의 부귀영화는 빈의 이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절정을 달렸다는 말이 맞았다. 평범한 외관과 달리 모차르트 하우스 내부에는 넓은 방이 많았다. 가내 연주회장과, 당구대가 있던 당구 방, 술과 카드게임을 즐기며 사치를 즐겼던 공간 등등 모차르트는 유희의 용도마다 방을 따로 두고 즐겼다. 그가 종종 시민들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열었다는 방은 아담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연주회였지만 그의 가내 연주회는 당시 빈에서 아주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이 집에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1785년, 이곳에서 모차르트는 일생의 역작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 그래서 모차르트 하우스를 피가로 하우스라 부르기도 한다. 그와 함께 작업하던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는 “내가 대본을 쓰면 그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음악으로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대체 어떤 재능일까, 짐작도 잘 가지 않는다. 그의 재능과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에 비하면 그가 누렸던 부귀영화도 작지 않았을까?

박물관에서 한바탕 시간여행을 끝낸 후 밖으로 나와 케른트너 거리를 바라본다. 해는 이미 넘어갔고 어둑해진 거리에는 휘황한 불빛들이 너울너울 흔들린다. 모차르트 시절뿐 아니라 지금도 빈은 음악으로 가득한 도시다. 왕궁에서도, 상점 앞에서도, 광장에서도 기타나 바이올린 등을 연주하거나 오페라를 부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관과 현의 선율이 거리의 조명과 어울려 형형색색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에 오선지가 녹아있는 것 같은 도시에서 나도 등에 짊어진 기타를 꺼내 음표를 하나 보태볼까? 어쭙잖은 생각은 바로 접었다. 빈의 품격에 어울리는 노래만이 이곳에서 연주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케른트너 거리에서 J-pop을 소리 높여 부르던 한 일본인 버스커(길거리 연주가)는 연주한지 5분 만에 거리 관리자에 의해 쫓겨났다. 노래가 너무 시끄럽다나. 미지림이나 칸타빌레가 아니라면 오스트리아에서 버스킹할 생각은 하지 마시라.

▲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주인공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춤추는 조명들이 널려있는 케른트너 거리를 정신없이 걷다가 남쪽 끝에 다다르니 거대한 건물이 등장한다. 은은한 조명을 받아 옥색으로 빛나는 ‘국립 중앙 오페라극장’이다. 음악의 도시에서 밤을 마무리하기에 공연 관람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관람료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기차에서 파는 생수 한 병(500ml)을 사고 두 시간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을 보는데 둘 다 3유로다. 비록 입석이지만, 이 자리를 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빈의 국립 오페라극장 앞은 날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극장 앞에는 이미 표를 사기위해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이 100m 정도 되는 긴 줄을 섰다. 매진될까 겁났지만 우선 무턱대고 대열에 합류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20분 동안 앞에 선 외국인 커플이 지치지도 않고 키스를 해댄다.

역시 유럽! 낭만적인 ‘민폐’가 넘치는 유럽이다. 키스할 애인이 없으니 대신에 유러피언 기분이나 내보자.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인 금빛 오페라글라스를 2유로 내고 빌려서 들어갔다. 극장 내부는 웅장하다. 우리나라의 예술의전당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1869년에 지어진 극장은 높은 원통 모양이고 객석이 6층까지나 솟아있다. 극장 내부로 이어지는 계단을 보고 있자니, 생뚱맞게도 영화에서 보던 타이타닉호가 떠올랐다. 여주인공 로즈가 디카프리오에게 손에 키스를 받던 그 빨간 카펫의 계단이다.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공연이 시작한다. 금발의 코 큰 사람들의 발레는 아주 매력적인 공연이다. 생쥐옷을 입은 귀여운 서양의 꼬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애교를 부리고, 병정들이 줄지어 아장아장 걷는다. 그 가운데서 주인공은 우아하게 팔과 다리를 휘돌린다. ‘내가 진짜를 보고있구나!’ 비록 입석이었지만 다리 아픈 줄 모르고 2시간 내내 즐겁게 서있었다.

▲ 오스트리아 어디에서나 품격있는 버스커(거리연주가)를 볼 수 있다.(왼쪽)

 
<호두까기 인형>의 여운이 귓가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극장 앞의 거리에서 한 오페라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섰다. “La donna e mobile, qual piuma al vento~” 나이 지긋한 노인이 매일 부르는 노래인양 자연스럽게 <리골레토 : 여자의마음>를 열창하고 있다. 이 역시 길거리 음악, 버스킹이다. 역시 빈은 음악의 도시다. 어느 거리에나 있는 버스커들,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차르트, 베토벤 등 거장들의 모습들, 높은음자리표 무늬로 깎아놓은 공원의 잔디, 이 모든 것이 빈에 담겨있다. 아직 빈 대학, 중앙 묘지, 벨베데레 궁전, 미술사 박물관 등 못간 곳이 많다!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어가는 빈의 밤거리를 트램을 타고 천천히 지나간다.


글·사진_ 이철규 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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