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군인전화다”
정말이지 군인 전화는 받기가 싫다. 대학 남자동기들이 모두 군대로 갔기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통씩은 군인에게 전화가 온다. 아직 일병이라 한참 힘들다는 동기도 있고, 어떤 동기는 얼마 후면 병장을 단다며 술 먹을 날을 잡잔다.

귀찮다. 솔직히 그렇다. 052, 043 등 서울 외 지역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99% 군인 전화라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군대 간 동기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쌍한 존재란다.

대개 하는 말은 “얼마 전에는 짜증나는 선임이 어쩌구 저쩌구……”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말을 반은 귓등으로 반은 측은한 마음으로 듣는다. 나도 인생 살기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분 나쁜 날에는 아무리 친한 동기 전화라도 안 받고 말아버릴 때도 있다. 그들의 푸념을 마냥 들어주기에 내 마음이 너무 이기적인건가. 전화기 무음 버튼을 누를 때마다 소심한 마음위에 한 겹씩 냉정(冷情)을 덮는다.

그래도 너무 고마운 건 내가 몇 번 안 받아도 그들은 또다시 전화를 해준다는 사실이다. “요즘 학교에는 무슨일 있냐”, “어떻게 지내냐”, “언제 휴가 나가는데 그때 꼭 나와라” 말해줄 때마다 인지상정은 상통(相通)한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렴 한두 해 쌓은 정이 그깟 귀찮고 힘든 기분 몇 날에 지워지랴. 내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집 떠나 있는 친구들에게 “그래 힘들지 고생좀 더 해라” 빈말이라도 해주게 되는 것이 계속 연락해주는 벗에 대한 인지상정 때문이더라.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마음 한켠에 새겨두는 생각이다.

허나 팽목항에서 불어온 잔인한 4월의 봄바람은 우리네 인지상정조차 메말라 붙게 했나보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 “그놈의 세월호는 언제까지 우려먹냐”, “산 사람은 살아야지, 뭘 어떡하라고 계속 우울한 얘기만 떠드는지” 따위들이다. ‘미개’나 ‘교통사고’ 같은 말실수가 배우신 높은 분들의 말 뿐만은 아니더라.

자식 잃은 부모 슬픔을 느껴봤냐는 말에 그렇다 답할 자가 몇이나 될까. 피차 그것이 얼마나 큰 슬픔일지 짐작만 해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말이라도 쉽게 뱉으면 안 되지 않겠나. 피켓 들고 나가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시라 권유할 생각도 자격도 나에겐 없다.

하지만 시신이라도 모두 되찾아 넋이라도 달랠 때까지는 안쓰러운 마음 갖고 있어두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나. 지금도 청와대 앞에, 분향소 앞에, 팽목항에 선 사람들이 자식 사진 부여잡고 가슴 치며 울고 있으니 인지상정 있다면 말이라도 조심하시라.

이철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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