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라는 노래를 아시는지? 내가 <기쿠지로의 여름>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피아니스트 히사이조의 <Summer>라는 곡에 이끌려서였다.

영화는 초등학생인 마사오가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사고로 아빠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마사오는 집을 나간 엄마를 찾으러 갈 결심을 한다. 그리고 동네 불량배 아저씨 기쿠지로와 함께 엄마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여름 여행을 통해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기쿠지로의 여름>인 이유는 여행을 통해 더욱 더 성장한 인물이 어린 마사오가 아니라 어른인 기쿠지로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불량배였던 그는 마사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여행 내내 한번도 웃지 않았던 기쿠지로는 마지막 장면에서 활짝 웃는다. 이 웃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그의 심경 변화를 보여준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해보고자 지난 주말 대전에 내려가 지인의 남동생인 유근복(13)군과 함께 무더운 초여름의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동물원이었다. 동물과 아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가슴 설레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사람의 전형이다.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역시 근복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한참 동안 전전긍긍하며 안내지도를 들여다봤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근복이가 “형, 그거 그만 봐요. 나 사막여우 보고 싶어요. 일단 가요. 거기 가면 전부 동물이니까 아무데나 가면 되잖아요”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곰에게 먹이를 주고 라마를 쓰다듬을 때도 안내지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안내지도 없이도 즐겁게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창 즐거운 한 때, 근복이가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뭐 먹을래”라는 나의 물음에 “아이스크림이랑 핫도그요”라는 근복이. 근복이가 나에게 “형은 안 먹어요?”라고 물었다. “응, 밥 먹어야지” 그러자 근복이가 “에이, 형 안 먹으면 저도 안 먹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핫도그를 손에 들었다. 정말 맛있었다. 결국 우리는 츄러스를 하나 더 먹었다. 평소 군것질을 절대 안 하는 나지만 이날 만큼은 배불리 군것질을 했다.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근복이와 벤치에 앉아 군것질을 하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썩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항상 걱정만 앞서는 나에게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안내지도 없이 관람한 동물원, 군것질을 하면 밥때에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동물원.’ 나에게 이번 여행은 쌓여있던 생각의 덩어리를 내려놓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근복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복이. 이제는 나 역시 동물원을 간다면 근복이처럼 군것질을 하며 안내지도 없이 동물원을 관람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누가 뭐래도 근복이를 통해서 배운 즐거운 내려놓기식 동물원 관람법이니까.


조준형 수습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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