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수기

공항버스를 타러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학기말 과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행 직전 제일 열심히 검색한 내용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아닌 기내에 와이파이가 터지는지의 여부였다. 끝내지 못한 과제를 하기 위해서다. 이런 와중에 제일 친한 친구는 동유럽으로 떠나는 내가 질투가 난다는 말로 과제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을 꿈꾸고 간절히 원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부러운 존재였을지!

여행을 다니는 내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쉽게 떠나지 못하는 여행을 취재를 목적으로 어떻게든 떠나야 했고, 무조건 겨울방학 안에 날짜를 잡아야 했고, 같이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부터 언제 떠날지, 누구와 함께 갈지 정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시험기간에 머리 싸매고 나서서 항공권을 예약했을 동기 오빠에게 새삼 고마웠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떠나는 일정 때문에 여행지인 네 국가에 대해 공부한 바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프라하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비행기에서 속성으로 여행 루트를 짠 것이 다였다. 그런데 체코 4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느낀 점은 아무런 정보와 기대 없이 시작한 여행이 더 큰 놀라움을 안겼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어느 곳에나 여과 없이 적용할 수 있지만 여행만큼은 다를 수 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프라하 성의 야경이 그랬고 클림트의 <키스>가 그랬고 두브로브니크의 빨간 지붕이 그랬다.

▲  천문시계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틴 성당의 모습. 내가 본 프라하의 마지막은 천문시계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본 틴 성당의 모습이었다. 동유럽에 도착한 첫 날 밤에도, 동유럽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에도 틴 성당은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책상 앞에는 틴 성당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붙어있다. 떠나는 날까지 눈을 떼지 못한 틴 성당을 근처의 프리마켓에서 그림으로 가져왔다.
다녀온 지 벌써 한 학기나 된 여행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여행 중 가지고 다녔던 수첩을 꺼내들었다. 다시 꺼낸 수첩의 맨 뒷장에는 여행 동안 떠오른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여행지에서 산 엽서에 정성스레 편지를 써줬다. 돌이켜보니 엽서에 얼마나 오그라드는 말을 썼을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보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도 감성이 풍부했던 여행 때가 아니면 또 언제 그렇게 진솔하게 내 감정을 고백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법.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수첩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오늘 내가 걸었던 거리가 지중해를 오고간 옛 바닷사람들이 다녔던 거리라니 신기하다.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그런 상인도 있었을까?(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이렇게 작지만 뭔가 기품이 느껴지는 도시를 걷고 있자니 고층 건물이 빽빽한 우리나라가 자꾸 떠오른다. 한국의 도시는 답답하고 한국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구나 싶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오노프리오 분수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기다리는 기분을 어떨까?(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등 주로 그날 여행지에 대해 느낀 점이다. 빈의 오페라 국립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고 온 날에는 ‘내가 한국에 돌아 가 자고 있을 이 시간에도 지구 저 편에서는 오페라가 울려 퍼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즐기고 있겠구나’라고 적었다. 공연을 보고 있던 시각은 저녁 8시, 한국은 한참 잠을 자고 있을 새벽 4시였다. 대한민국 속 서울, 동대문구의 청량리에 살고 있는 내가 세계는 넓다는 것을 조금은 느낀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웬만해선 항상 같이 다녔다. 여행 중반 너무 피곤해서 한두 명이 숙소 안에서 쉰 것, 여행 마지막 날 아침 각자 자유여행을 한 것을 제외하면 항상 같이 움직였다. 하지만 “어떻게 여자 혼자서 유럽 여행을 해?”라는 친구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혼자 유럽에 온 사람들은 많았다. 심지어 대부분이 우리 또래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혼자 다니고 싶을 때는 혼자서, 같이 다니고 싶을 때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동행하거나 같은 숙박지의 사람과 함께 하는 듯했다.

▲  체코 쿠트나호라에서 정 많은 할아버지께 반해 한 컷. 기차역을 찾아 헤매고 있는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손짓발짓을 다 해가며 기차역을 묘사했지만 결국 기차역은 못 찾았고 기차 왕복권을 끊고 쿠트나호라에 도착한 우리는 프라하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야했다. 할아버지는 버스에 우리가 오르는 모습을 보고야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복에 겨웠는지 같이 온 동기들이 세 명이나 있는 점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똘똘 뭉친 우리는 외로울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사람과 여행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중에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우리 또래의 한국 남학생 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은 터키에서 같이 크로아티아로 왔고 둘의 다음 행선지가 다른 상황에 한 명이 우리와 행선지가 같아 기뻐하는 눈치였다. 두브로브니크까지 함께 왔지만 숙소가 달라 헤어졌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끝이 난 듯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 이내 다시 만나게 됐다. 여행 중후반에 이르자 한 두 명이 피곤함을 못 이겨 숙소에서 나오지 못했고 두브로브니크 여행 가이드를 자처했던 동기오빠도 삐진 것이다. 이렇게 된 김에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기로 했다. 그 날 늦은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동기 오빠의 기분은 오전보다 좋아진 듯 했다. 새로운 사람과의 여행은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로망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남자친구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여기저기 여행후기를 들려준 내 모습이 그 즐거움을 증명한다.

수첩을 보니 가장 많이 쓴 말은 ‘나 정말 멋지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이런 곳을 여행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너무 좋다. 이렇게 예쁜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정말 실낱같이 작을 것만 같다’며 ‘나 정말 멋지게 살고 싶다’는 말이 주문처럼 여러 번 적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 저녁, 나는 25kg짜리 짐을 들고 엄마, 아빠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여행지에서 수시로 떠오른 부모님 얼굴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나중에 직업을 가지고도 여행을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떠나고 싶은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을 하는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청춘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값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시기를 빛나도록 즐기는 것도 그만큼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더 내 청춘을 즐기고 싶다.


글·사진_ 이설화 기자 lsha22c@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