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스맨>의 주인공 알렌은 언제나 “노”를 일삼는 부정적인 남자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 칙칙하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인생 역전 자립프로그램’에 가입하게 된 알렌. 알렌은 ‘긍정적인 사고가 행운을 부른다’는 프로그램 규칙에 따르기 위해 모든 것에 “예스”를 외쳐보기로 한다. 그러자 알렌의 세상은 환하게 밝아진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요즘, 과제와 시험공부에 뒤덮여 바쁘다고 불평만 해왔던 나. 덩달아 칙칙해졌던 내 주변 세상. 나도 하루쯤은 알렌처럼 모든 일에 예스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예스데이’는 시작됐다.

첫 번째 예스는 나의 단잠을 깨우며 울린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이른 시간에 미안한데 넷프린트 아이디 있어? 충전을 못해서 그러는데 150원만 빌려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시간은 아침 8시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소란인지. 150원 때문에 내 잠을 깨운 친구가 미웠다. 하지만 오늘은 예스데이인 만큼 짜증을 뒤로하고 아이디를 빌려줬다.

예스데이의 두 번째 상황은 뜻밖에도 혼자서 장을 보는 중에 발생했다. 청과물 시장을 지나는 중 가판대에서 굴러떨어진 듯한 참외를 주워서 과일가게 주인아저씨에게 건넸다. 주인아저씨는 참외를 제자리에 올려놓다가 다른 참외도 떨어트렸다. 난장판이 된 가판대를 수습하느라 양손을 바삐 움직이시던 아저씨는 겸연쩍게 웃으며 떨어진 참외를 다시 주워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참외를 주워드렸다.

마지막 예스는 길 한복판에서였다. 엉겁결에 ‘국경없는의사회’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게 됐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길거리 캠페인 자원봉사자는 후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한 뒤 나에게 도와줄 의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후원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정기적으로 돈을 내는 건…’, ‘오늘은 예스데이인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나는 또 예스를 외쳤다.

세 가지 예스를 통해 나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건넨 작은 예스는 언제나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넷프린트 아이디를 빌려 간 친구는 “흔쾌히 빌려줘서 고마워. 내가 나중에 음료수 살게”라고 말했다. 150원짜리 예스가 1000원짜리 음료수로 돌아온 것이다. 참외를 떨어트리던 아저씨는 “학생 도와줘서 고마우이. 요새 그런 마음씨가 드물어. 이거 하나 가져가”라며 내 손에 참외를 쥐어 주셨다. 가장 고민했던 예스인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은 내게 가장 큰 보답을 해줬다. 그것은 바로 후원 활동에서 오는 보람이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던 후원을 몸소 실천하게 되니 아주 보람찼다. 지금도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보고서를 보면 내가 이런 좋은 활동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비록 하루 체험에 그친 예스데이였지만 예스는 영화 속 알렌에게 그랬듯 내 주변 세상을 환하게 밝혀줬다. 언젠가 당신의 삶이 칙칙하게 느껴진다면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예스를 외쳐보는 건 어떤지!


김민기 기자 mickey@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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