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서 느끼는 당혹감, 수치스러움을 다시 생각해본다. 숨막히는 경쟁의 장 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하며 나만을 중심으로 살아온 나의 삶과 우리의 삶 전체가 이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승객을 버리고 뛰쳐나온 선장과 승무원, 온갖 편법과 불법을 묵인해준 공무원들과 제도, 권한과 책임에 전혀 걸맞지 않은 제도화된 무능의 전형인 전문가들의 모습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중첩되고 이것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죄책감과 정서적 동요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동안 우리들은 급속하게 진행되어온 공동체의 해체 속에서 타인의 삶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은 갈등과 경쟁의 관계로 상정되었고 협력과 연대의 가치는 무시되었으며 이런 구조 하에서 원자화된 나는 나의 생존과 이를 위한 자원의 보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왔고 또한 자주 그것이 옳은 것인양 자기를 합리화해왔다. 우리들은 나의 생존을 위한 방어책으로 자주 주어진 임무를 방기하고 승객을 버리고 뛰쳐나왔고, 편법과 불법적인 제도를 묵인했으며 전문가연하였으나 그에 걸맞는 깊이 있는 지식을 쌓기 보다는 보상과 명성을 좇아왔으며, 그 와중에 타인은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고 그저 경쟁해야 할 대상이나 이용해야 할 도구적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된 결과는 착하고 순수했던 아이들의 희생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여러 부분의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재난 안전분야의 정책과 행정조직의 개편, 예산 및 인력 확충, 부패근절 등등. 모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일들은 우리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삶과 고통을 외면했던 우리의 삶과 이를 조장했던 구조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이므로.

보다 근본적으로 고통받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응답하는 나 자신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에게 감정이입하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타인을 만나 진정으로 그와 소통할 수 있을 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고 고통받는 타인을 외면하지 말라는 보편적인 도덕율에 응답하는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타인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 되는 정치공동체와 사회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공동체 구조 속에서만이 사회구성원들은 타인의 삶과 고통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지속할 수 있으며 더 큰 연대와 공감으로 자아가 확대될 수 있으므로.

경쟁과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해체되었던 타인의 삶을 향한 공동체를 회복한다면 우리의 죄책감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지울 수 없는 수치심으로 우리의 삶에 남겨질 것이다.


이정희(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