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후 쓸 일이 없을 것 같던 ‘선비’라는 단어가 인터넷 용어로서 다시금 널리 쓰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단어는 그 쓰임이 조금 변질됐다. 조선시대의 선비가 ‘고매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학식이 있는 사람’을 뜻했다면, 오늘날에 와서는 ‘쓸데없이 진지하고 착한 척 하는 가식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가식 없는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는 요즘 인터넷 사회에서 선비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함이 든다. 누리꾼들은 분명 선비를 나쁜 뜻으로 사용할 텐데 그들에 의해 선비로 명명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그들보다 예의바르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일례로 내가 즐겨 찾는 한 농구 커뮤니티는 배려와 존중을 운영원칙으로 삼는다. 다른 곳에 비해 규제를 많이 하는 탓에 욕설이 난무하거나 인신공격이 오가는 눈살 찌푸려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규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타 커뮤니티 사이트들보다 조금만 더 배려하면, 그러니까 현실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예의범절 정도만 지키면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운영진들의 규제에 불만을 품고, 해당 커뮤니티를 ‘선비 소굴’로 표현하고 있다. 나 또한 의도치 않게 선비들 중 한 명이 됐으니 이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모욕적인 언사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식 없음’이라는 가치가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확실히 잘못됐다. 많은 누리꾼들은 큰 오해를 하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가식 없는 모습이란 실상 배려 없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솔직함이라는 단어를 방패삼아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모욕적인 언사로 무시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진솔한 행동일 뿐’이라며 포장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거지가 어디가 ‘쿨’하고 진솔한 것이란 말인가.

외눈박이 마을에 정상적인 사람이 들어가면 비정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병신이라 욕하더라도 나 자신이 정상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선비 소리를 들은 당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한편으로는 나처럼 선비라는 단어를 일종의 훈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예의범절을 지키는 당신들이 많아질수록 인터넷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김준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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