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 <명량>과 배경을 빌려온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명량>이 한창이다. <명량>은 <아바타>를 넘어서며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1위에 올랐고 8월 30일 기준 누적관객수 약 1,666만명을 돌파했다. <명량>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과 <군도: 민란의 시대>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두 영화는 각각 누적관객수 기준 2014 박스오피스 순위 4위와 7위에 올랐다. 흥행에 성공한 세 영화를 가로지르는 공통 키워드는 ‘사극’이다. 각종 언론 매체들은 ‘사극 열풍’을 거론하며 사극 영화들의 흥행가도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끄는 사극 영화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또, 반대로 사극 영화에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사건’ 자체를 충실히 재현하는 사극 영화

사건 자체를 빌려온 사극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 무슨 얘기가 전개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극 영화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사극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 속의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사극 영화는 포스터 등을 통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대중들에게 노출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해당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더 자세하게 알아보거나 사건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에 특정한 기대치를 설정하게 된다. 관객들 개개인마다 자신이 바라는 사극 영화의 모습을 설정하는 것이다. 어떤 관객은 사극 영화가 고증에 충실해주길 바라는 반면, 어떤 관객은 인물에 대한 신선한 해석과 평가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이처럼 관객은 사극 영화 관람에 앞서 미리 자신들만의 기대감을 가진 채 영화관으로 향한다.

이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을 재현하는 사극 영화들은 대체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사극 영화 속에서 역사적인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떤 관객은 그 영화가 상당히 불편해진다. 한 포털사이트의 대하사극 대표카페에 <명량>에 대한 감상을 묻자 한 누리꾼은 “<명량>을 보기 위해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자랑스런 역사적 사건이 성공적으로 영화화되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조선 수군 사망자가 2명이었다는 실제 기록과 달리 영화에는 긴장감을 위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백병전이 연출됐다. 고증이 부실해지는 순간 영화 전체가 흔들렸다”는 덧글을 달기도 했다. 어떤 관객에게는 사극 영화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제작자들의 해석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제작자의 해석이 과도하게 개입돼 인물 묘사나 사건이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 영화의 스토리가 지나치게 평면적이 되기 때문이다.


‘배경’만을 빌려온 사극 영화

역사 속의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은 사극 영화가 있는 반면, 역사 속에서 배경만을 차용한 영화도 있다. 우리가 더 자주 접하는 것은 후자다. 사극 영화가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사극 영화가 현대 영화에서는 가질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 영화에서 나타나는 시대적 배경, 배우의 의상, 대사톤 등이 그렇다. 활과 칼을 사용하는 전쟁 장면, 운명을 극복하려는 개인과 계급사회의 갈등, 사극 특유의 맛깔나는 대사톤, 우스꽝스러운 노비 복장 등은 사극 영화만이 가지는 고유의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배경을 차용한 사극 영화는 제작 시 선택할 수 있는 장르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제작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왕의 남자>, <최종병기 활>, <후궁: 제왕의 첩>,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등의 사극 영화들은 드라마, 액션, 성인 멜로,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관객몰이에도 성공했다. 장르의 폭이 넓다는 것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춰 영화의 청사진이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자에게 사극 영화는 다양한 장르를 담아낼 수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존재인 셈이다. 이처럼 사극 영화는 다양한 장르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매력을 어필함으로써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의 배경을 기반으로 한 사극 영화들이 항상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장르에 새로운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다는 장점에 기대 무리한 설정을 도입하는 순간 영화는 무너진다. 제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와 영화 배경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져버리기 때문이다. 그 예로 올해 개봉한 <조선미녀삼총사>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총을 사용하는 과묵한 남자 킬러가 등장하는 기존 액션 영화와 달리 <조선미녀삼총사>에는 요요를 사용하는 여자 현상금사냥꾼들이 등장한다. 미녀들이 등장하는 코미디 액션극이라는 제작 의도를 살리려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벨리댄스를 추는 장면이 맥락 없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무리한 설정들은 포털사이트의 후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처럼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신선한 이야기를 위한 제작자의 무리한 설정과 다양한 매력을 제공하기 위한 역사 속의 배경이 어긋나면서 사극 영화가 가진 장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배경’을 빌려온 사극 영화가 배경을 그 장점으로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작자의 의도와 시대적 사실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이 필요하다.

사건 자체를 빌려온 사극 영화인 <명량>의 열풍이 영화계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그 열풍의 여파로 후속작인 ‘한산’과 ‘노량’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을 재현한 사극 영화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량>이 앞으로 사극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기대된다. 한편 ‘배경’을 빌려온 사극 영화인 <해적> 역시 누적관객수 650만을 돌파하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해적>은 기존의 사극 영화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코미디, 액션, 해상 모험이라는 장르들을 잘 버무렸다는 평을 들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개봉할 사극 영화들이 어떤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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