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서울시립대문화상

▲ 심사위원
이동하 교수
예심을 거쳐서 넘어온 12편의 작품은 대부분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조선시대의 사회에서부터 미래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으며, 기법적인 면에서도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사실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 제일 많지만, 의도적으로 설화적인 스타일을 채용한 경우라든가, 카프카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변신담을 보여준 경우, <어린 왕자>풍의 동화적 상상력을 도입한 경우 등등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한 예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소설 쓰기에 임하는 고교생들의 상상력과 관심이 얼마나 자유롭고 넓게 열려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많은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약점도 있다.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끌어가고 마무리 짓는 힘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애를 써서 도입부의 얼개를 만들어놓고는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럿 보인다. 그런가 하면 충분한 서사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미리 정해둔 결말로 직행해 버림으로써 설득력의 약화를 가져오고 만 작품도 여러 편 있다. 이야기로서의 구조 혹은 짜임새를 탄탄하게 갖추도록 하는 것은 소설 창작의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이 전제된 마당에서라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나 관심의 넓이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학생들이 좀더 유념했으면 한다.

방금 일반적인 응모작들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예외가 없지는 않다’는 말을 한 바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예외에 해당하는 작품이 <1번 게이트는 오른쪽>이다. 이 작품을 쓴 학생은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출중하며, 주인공의 귀향이라는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배치도 적절하게 마련해 놓고 있다. 이런 점 말고도 이 작품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청춘과 노년의 대비 및 시골과 도시의 대비라는 이중의 대비 구도를 바탕에 깔고 젊음의 방황과 그 돌파 과정을 그려 보고자 한 설정이 무리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소설의 육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 현실의 세부사항에 대한 관찰 및 묘사도 어느 정도 되어 있다. 문장력도 신뢰감을 준다. 이러한 몇 가지 점을 고려하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한다.

우수작으로는 <도깨비를 보았는가>를 선정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농촌의 삶을 실감있게 그려내면서 설화적 상상력을 끌어들여 독특한 매력을 보탠 것으로,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강점이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작자가 자신있게 쓸 수 있는 부분을 잘 붙잡아 표현한 작품이다.

그 밖에 <구멍의 가장자리>, <오늘의 코디>, <담쟁이 터널>을 가작으로 선정한다. 앞의 두 작품은 소시민적인 삶의 고달픈 측면을 잘 포착한 소품으로, <담쟁이 터널>은 어린이들 세계의 한 양상을 흥미롭게 부각시킨 작품으로 각각 의의가 인정된다. 앞으로 분발하여 더 좋은 작품을 쓰기 바라며 실제로 그렇게들 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이동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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