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에는 찬밥이 한 쪽에는 따뜻한 밥이 있다. 이 상황에서는 대부분 찬밥대신 따뜻한 밥을 선택할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뜻한 밥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가 모르는 화학적 비밀이 숨어있다.


쌀의 주성분 ‘전분’의 구조

쌀의 주성분은 전분(녹말)이다. 전분은 아밀로오스(amylose)와 아밀로펙틴(amylopectin)으로 구성돼 있다. 아밀로오스는 포도당(C6H12O6)이 사슬처럼 긴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고분자이다. 반면 아밀로펙틴은 아밀로오스에 포함된 포도당 분자에 다른 포도당 분자들이 결합돼 마치 식물 뿌리처럼 곁가지를 형성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고분자이다. 전분의 종류에 따라서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의 혼합 비율은 달라진다. 보통 쌀에 들어있는 전분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이 2:8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분은 포도당이 여러 개로 이어진 형태를 띤다. 이러한 포도당 사슬은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부분도 있지만 수소결합(1)으로 인해 매우 규칙적 배열을 이루고 있는 부분도 있다. 이 중 규칙적으로 배열된 부분을 ‘미셀’이라고 한다. 미셀 부분은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기 때문에 물 분자가 잘 파고들 수 없다. 전분은 화학적 구조에 따라 α전분과 β전분으로 나뉘는데 미셀구조를 가진 전분은 β전분에 속한다. β전분은 물에 녹지 않고 침전한다. β전분은 미셀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화효소가 작용하기 어려워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반면 α전분은 물에 잘 녹고 소화도 잘된다.

▲ 전분을 구성하고 있는 아밀로오스(좌)와 아밀로펙틴(우)

밥이 되는 과정 ‘호화’, 굳는 과정 ‘노화’

이러한 β전분이 물속에서 가열되면 물 분자가 파고들어 미셀구조에 틈이 생기고 전분의 구조가 무너지게 되는데 이를 전분의 ‘호화’라 한다. 즉 β전분이 가진 미셀구조의 수소결합이 끊어져 분자들 사이가 벌어진 α전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소화효소의 작용을 받기 쉬워져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밥이 된다. 흔히 밥을 짓는다는 것은 쌀의 β전분을 α전분으로 호화시키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환된 α전분도 식으면 다시 원래의 β전분으로 돌아간다. 갓 지은 밥이나 방금 만든 떡이 맛있는 이유는 이들이 α전분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면 찬밥은 이 α전분이 β전분으로 되돌아간 상태이므로 우리는 맛이 없고 딱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β전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분의 ‘노화’ 현상이라고 한다.


라면국물 속 ‘찬밥’

한편 라면국물에는 뜨거운 밥보다 찬밥을 말아야 맛있다고들 말한다. 이 말에도 화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β전분 상태의 밥을 라면국물에다가 말게 되면 노화된 밥이 뜨거운 국물 속에서 다시 α전분 상태로 돌아가게 돼 맛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라면국물에 뜨거운 밥을 말게 되면 밥에 있던 수분이 라면 국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농도가 낮은 쌀밥 속의 수분이 농도가 높은 라면국물로 이동하는 삼투압(2) 현상 때문이다. 따라서 뜨거운 밥을 라면국물에 말면 밥에서 빠져나온 수분 때문에 라면 국물이 더 싱거워진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찬밥을 말아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1) N(질소), O(산소), F(플루오르) 같은 전기음성도가 큰 원소를 포함한 분자와 수소원자를 가진 또 다른 분자 사이의 전기적 인력으로 인해 형성되는 분자간 힘. 수소결합을 하지 않는 다른 분자 사이보다 좀 더 강한 인력을 갖는다.

(2) 농도가 다른 두 액체를 반투막으로 막아 놓았을 때, 용질의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매가 옮겨가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압력이다.


글_ 유예지 기자 yy0237@uos.ac.kr
사진_ 위키미디어 Commons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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