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볼라 바이러스의 증식 모습. 파란색 에볼라 바이러스가 노란색 숙주 세포를 감염시키고 있다.

에볼라가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의 지난 9일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감염자 수는 총 4293명이고 사망자 수는 2296명에 이른다. 더 무서운 사실은 전체 감염자의 49%와 전체 사망자의 47%가 최근 3주간에 걸쳐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생물? 무생물?

WHO에 소속된 사람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죽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외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바이러스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전문성을 의심할 것이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위 문장이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죽다’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생물에게 쓰인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다. 어떤 개체가 생물체로 분류되려면 ‘생장을 위해 대사작용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양분을 분해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 대사작용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이러스를 대상으로는 ‘죽는다’는 표현 대신 ‘비활성화’ 됐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자신과 같은 후손을 만들어 증식하는 생물체로서의 능력 또한 갖고 있다. 대부분의 생물체들은 세포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따르는데 바이러스 역시 중심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중심 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DNA와 RNA다. 생물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RNA중합효소의 영향을 받아 RNA로 변하는데 이를 전사(Transcription)라고 한다. 전사를 통해 만들어진 RNA는 역할에 따라 mRNA(messenger RNA), rRNA(ribosomal RNA), tRNA(transfer RNA)로 나눠진다. DNA에 작용한 RNA중합효소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복사본인 mRNA를 만들어낸다. mRNA는 DNA의 복사본이기 때문에 DNA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면 rRNA가 mRNA의 염기서열을 해독해 DNA의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만들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아미노산을 가지고 있는 tRNA가 rRNA와 만나 설계도의 지시대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들은 복제과정을 겪은 DNA와 결합해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바이러스의 증식과정 역시 이와 동일하다. 바이러스는 핵산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핵산은 DNA와 RNA로 나뉘는데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는 이 안에 담겨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침입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자신을 증식시킨다. 이처럼 무생물적 특성과 생물적 특성을 모두 갖춘 바이러스를 혹자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는 이유

매년 3월 WHO에서는 ‘올해의 독감’을 발표한다. 유행할 만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행보를 예측해 백신 제작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년 서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해답은 변이에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경희대 생물학과 정용석 교수는 “바이러스는 증식과정에서 유전체의 복제를 담당하는 중합효소를 만나는데 변이체는 이 과정에서 생성된다. 유전정보가 DNA에 담겨 있는 바이러스는 10억번 중 한번 꼴로, 유전정보가 RNA에 담겨 있는 바이러스는 천번에서 만번 중 한번 꼴로 변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의 에볼라 바이러스 역시 최초로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의 종류 중 하나인 자이르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킨 예다. 두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다. 현재 두 바이러스는 DNA 서열상 3% 차이가 나는데 이는 굉장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RNA바이러스의 특성을 가진 자이르 바이러스가 높은 변이율을 가지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변이는 의도를 갖지 않는 내적 특성이며 진화는 방향성을 띠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바이러스들은 에베레스트 산 위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발견한 정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바이러스들은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변이를 일으키며 증식하고 있다.


▲ 바이러스의 증식 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인류가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자세

누구나 한 번쯤은 예방 접종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 사후에 투여하는 항생제와는 달리 예방 접종에서 사용하는 백신은 사전(事前)적인 개념이다. 세균은 살아있는 생물로서 생리적인 대사작용을 하기 때문에 세포막을 가지고 있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막에 직접 침투해서 세균을 죽인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 내에 기생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 초기에 항생제를 먹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숙주의 세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해야 하는데 이는 숙주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숙주의 몸에 백신을 투입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바이러스와 비슷한 스파링 파트너를 사전에 투입해 숙주의 면역력을 키워 본격적인 싸움에 대비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내재적인 특성 중 하나가 ‘변이’기에 백신 역시 바이러스의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이러스는 크게 DNA바이러스와 RNA바이러스로 나뉜다. DNA바이러스는 특성상 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낮아 진화율이 느리다. 따라서 백신 개발이 비교적 용이하고 한 번 개발된 백신은 오랫동안 유의미하다. DNA바이러스의 예로는 천연두바이러스와 B형 간염바이러스 등이 있다. 하지만 RNA바이러스는 특성상 변이가 왕성하고 진화율도 매우 높다.

따라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 어렵게 백신을 상용화한다고 해도 바이러스가 변이함에 따라 얼마 못 가 백신의 효과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감염증상이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백신개발의 효용과 기회비용을 고려해 백신개발을 포기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감기바이러스들이 그 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 광견병, 일본뇌염 바이러스들처럼 치명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백신 개발의 당위성이 커진다. 이 경우에는 RNA바이러스로서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고유의 바이러스 특성과 단백질 구조에 초점을 맞춰 백신을 개발한다. 변이가 왕성해 진화율이 높은 RNA바이러스들의 변이체들에 일일이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상용화된 RNA바이러스 백신의 경우 대부분 바이러스를 약독화(바이러스의 증식 능력은 있지만 병원성을 낮추는 방법)시키거나 바이러스에 약품처리를 하여 유전체를 불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접종을 실시한다. 개별 RNA바이러스에 대응하지 않고 RNA바이러스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 교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금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을 수도 있다. 도움을 주기 위해 섣불리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절차를 지켜 환자를 격리시켰어야 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균자를 첫 번째로 발견하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글_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사진_ 네이버캐스트, 라이프사이언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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