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장소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렸다” 2012년 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문화재의 값싼 관람료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예를 들며 무료입장 실시 이후 관람질서가 엉망이 되어버렸고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문화재 관람료는 올려야 할 것 같다’며 동조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현재 문화재청 측에서는 고궁 입장료를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고궁 입장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2년 전만큼 살갑지는 않다. 입장료 인상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선진국 수준으로의 인상’ 소식에 국민들은 “일반 시민들을 쥐어짠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체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의 입장료를 받기에 국민들은 이런 반응을 보일까? 이에 앞서 고궁 입장료는 왜 올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려야 할까?

▲ 창경궁에서 '궁궐의 일상을 걷다-영조와 창경궁'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값싼 요금이 값싼 인식을 만드는 것 아니겠소?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1일 자유이용권이 18유로(약 2만3천원)이고, 영국 버킹엄 궁전은 11파운드(약 1만9천원)다. 중국 자금성의 경우 입장료만 60위안(약 1만원)이고 특정 건물을 관람하려면 추가비용을 더 내야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고궁 입장료는 매우 저렴하다. 서울 4대 궁의 관람료는 성인을 기준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은 3천원, 덕수궁과 창경궁은 천원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값으로 우리나라의 고궁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만 24세 이하이거나 만 65세 이상인 경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런 낮은 가격의 고궁 입장료는 국민들에게 ‘고궁은 값싼 문화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저렴한 입장료 덕분에 우리나라의 고궁이 일반 시민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점심시간 즈음 경복궁에서 만난 회사원 A씨는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가끔씩 시간이 날 때마다 경복궁을 찾는다. 입장료가 저렴하니까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저렴한 입장료는 문제를 일으킨다. 유홍준 씨가 우려했던 대로 문화유산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A씨는 “접근성 자체가 워낙 좋다 보니 경복궁을 집 앞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며 건물 안을 함부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유 씨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이 문제를 입장료 인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길거리 장터에서 싸게 구입한 물건보다 명품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궁을 관람하기 위한 요금이 인상되면 자연스레 고궁을 관람하는 태도 또한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손녀와 함께 창경궁 나들이를 나온 B씨는 “적지않은 금액을 내고 들어왔다면 조심스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질서는 지키면서 관람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시설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아뢰오

고궁 입장료가 인상되면 더 나은 시설관리도 가능해진다. 늘어난 수익이 문화재를 유지하거나 복원하는 곳에 재투자되는 것이다. 문화재청 측은 기성 매체를 통해 “고궁이 별로 볼 것이 없던 시절에는 낮은 입장료를 받았지만 현재는 상당수의 건물이 복원됐다”며 관리 비용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밝혔다. 이어 고궁 입장료가 인상된다면 효율적으로 문화재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숭례문 화재 등 잇따른 문화재 소실에 따라 시민들도 시설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궁 입장료가 인상되면 철저한 관리를 통해 이와 같은 참사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입장료 인상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도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궁궐과 관련된 축제가 가끔 열리는데 입장료가 인상된다면 늘어난 수익을 통해 축제를 더 자주 개최할 수 있다. 최근 서울 4대 궁에서는 가을을 맞아 ‘궁중문화축전’이 열렸다. 시민들의 호응은 좋았다. 특히 경복궁에서 열린 수문장 교대의식이나 창덕궁에서 열린 궁중음식전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궁궐의 일상을 소개하는 행사인 ‘궁궐의 일상을 걷다 - 영조와 창경궁’을 구경하던 B씨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니 손녀가 아주 좋아한다”며 “입장료를 조금 올리는 대신 궁궐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하고, 이런 행사들을 일 년에 한 철 진행하기보다 더 자주 개최한다면 입장료 인상에 대한 불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수준의 인상’은 불가하옵니다

고궁 입장료 인상에 대해 국민들이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입장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데는 찬성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원 주장대로 요금을 인상한다면 고궁 입장료는 수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런 급격한 수준의 입장료 인상이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창덕궁을 둘러보던 C씨는 선진국 수준의 인상안에 대해 “그 정도로 인상한다면 한동안은 아무도 안 찾아올 것 같다. 입장료 인상에 찬성하는 나 자신조차도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B씨도 “입장료가 갑작스레 4~5배 인상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문화재청이 처음에 주장했던 수준의 입장료 인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화재청도 이를 고려해 ‘고궁 및 능원 관람료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적절한 수준의 인상폭을 찾고자 한다. 10월 초순 중으로 용역이 마무리될 것”이라며 사업이 거의 마무리됐음을 알렸다. 이처럼 한동안 말이 많았던 고궁 입장료 인상은 모두가 만족할만한 방향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C씨는 “고궁 입장료 인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정책이었던 만큼 원만하게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_ 김준태 기자 ehsjfems@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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