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편견이죠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12인의 노한 사람들>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12명의 배심원들에 관한 이야기다. 배심원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가진 18살 소년의 범죄 유무를 가리기 위해 회의를 진행한다. 여러 재판을 거친 후 재판장과 좌중들은 소년의 유죄를 거의 확실시하고 있다. 회의에 앞서 진행한 투표에서 11명의 배심원들이 소년을 두고서 유죄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단 한 명, 소년의 무죄를 주장하는 배심원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며 회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2인의 노한 사람들>과 연관 영화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영화는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다. 그 이유는 두 영화의 주제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수의 의견이 곧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12인의 노한 사람들>이 명화로 꼽히는 이유는 영화의 주제보다는 시나리오의 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맨 프럼 어스>와 <폰 부스>를 추천한다. 두 영화는 <12인의 노한 사람들>처럼 시나리오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맨 프럼 어스>는 14,000년 전부터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한 남자의 주장과 그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대화가 중심이 되는 영화다. <폰 부스>는 의문의 인물로부터 걸려온 공중전화를 통해 살해 위협을 받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주인공의 부도덕한 삶을 추궁하는 의문의 인물과 이에 대해 변론을 하는 주인공의 대화로 구성된다.

▲ 카메라의 초점이 고정된 공간이면서 영화의 주된 배경인 회의실 안

두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대화’로 구성된 영화라는 점에서 <12인의 노한 사람들>과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구성 요소 중 시나리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시나리오는 배우의 행동과 대사를 기술하고 있는 각본이다. 세 영화 모두 카메라의 초점이 한정된 공간에 있는 배우들에게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영화를 어떻게 이끌어나가는지를 결정하는 시나리오가 중역을 맡게 되는 것이다.

세 영화의 후문을 들어보면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세 영화 모두 저예산 영화였다는 점이다. <12인의 노한 사람들>은 저예산 영화의 대표격으로 뽑히는 영화이고 <맨 프럼 어스>의 촬영비는 약 3만 달러라고 한다. 유명배우가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헐리우드의 많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CG 하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폰 부스>는 ‘30년의 시나리오 구상기, 1주일간의 집필기, 12일간의 촬영’이라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영화가 좋은 영화로 회자되는 이유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가지는 화려한 영상미 보다 시나리오의 힘이 클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일 것이다.

<12인의 노한 사람들> 역시 눈을 사로잡는 특수 효과 따위는 없다. 50년도 더 된 흑백영화기 때문에 영화를 끝맺는 아름다운 노을 역시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선풍기조차 잘 돌아가지 않는 좁은 배심원 방으로 고정돼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인물들의 대화가 있고 그 대화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이 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지.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맨 프럼 어스>(리처드 웬크만, 2007)
- <폰 부스>(조엘 슈마허, 2003)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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