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도 영어 학원을 가는 시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 영어의 8품사는 알면서, 국어에는 몇 품사나 있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없다. 어릴 때부터 국어학원보다 영어학원에 먼저 다니기 시작하고 대학에 와 다른 학원은 안 다니더라도 토익 학원은 모두가 열심히 다닌다. 당장 우리대학교 교양필수 과목만 보더라도 국어 과목이라 할 수 있는 과목은 <글쓰기> 한 과목뿐이지만, 영어과목은 읽기, 쓰기, 말하기로 나뉘어 세 과목씩이나 편성돼 있다. 취업할 때까지도 영어는 우리의 뒤를 따라다닌다. 때때로 우리의 앞길을 막기도 한다. 정말 우리의 일상에서 또 일생에서 영어가 이토록 중요한 걸까. 국어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영어만 열심히 공부했더니 ‘웬’과 ‘왠’이 헷갈리고 ‘체’와 ‘채’가 헷갈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 일상에서 많이 혼동하는 한국어를 되짚어보자.


들리는 대로 쓰면 틀리는 국어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해 가장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단연 받아쓰기다. 다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받아 적고 친구들과 채점해보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재밌는 예(→얘)기 해줄게’ ‘선생님 감기 빨리 낳(→나)으세요’ ‘어의(→이)가 없다’ ‘구지(→굳이) 해야 될까요’ ‘김치찌게(→개)가 맛있다’는 심심치 않게 틀리는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표기법은 초등학생들만 틀리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감기 낳으세요’라고 하는 남성이 이성에게 차일 확률이 92.9%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기본적’ 인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저에게 ‘일해라절해라(→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나 ‘설겆이(→거지)’ ‘문안(→무난)하다’처럼 일상생활에서 틀리는 맞춤법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조차 맞춤법 실수를 하는 이유는 단어가 발음되면서 다양한 소리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발음을 아주 정확하게 하지 않는 이상 ‘예기’와 ‘얘기’, ‘어의’와 ‘어이’는 큰 차이 없이 들린다. 게다가 받침까지 고려하다 보면 ‘설거지’를 ‘설겆이’로 ‘나으세요’를 ‘낳으세요’로 쓰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틀리는 것이다. 지금 관심 있는 이성에게 ‘날이 쌀쌀하네요. 감기 빨리 낳으시길 바랄게요’라고 보내려던 참이었다면, 그런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면 글을 복사해 인터넷에 한 번만 검색해보자. 인터넷 속 친절한 지식인들이 감기는 ‘낳는’ 것이 아니라 ‘낫는’ 것임을 알려줄 것이다. 


커피 나오 ‘셨’ 습니다?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인 알바몬이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말실수 중 가장 거슬리는 것으로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어요’에 이어 ‘그 메뉴는 할인이 안 되세요’가 뽑혔다. 그 외에도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할 때 듣는 ‘그 제품은 OO만원이십니다’, ‘재고가 없으십니다’ 같은 말들 역시 비슷한 말실수에 해당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잘못 사용되는 존댓말은 선어말어미 ‘–시-’를 써서 물건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는 상대방의 신체·심리·소유물을 높여 상대방을 간접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 매고 계신 넥타이가 멋있으시다’는 말은 넥타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높이기 때문에 옳은 표현이다. 하지만 커피나 가격, 재고 등은 신체·심리·소유물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시-’를 사용하면 틀린 표현된다. ‘OO만원이십니다’는 ‘OO만원입니다’로 ‘재고가 없으십니다’는 ‘재고가 없습니다’로 바꿔 써야 한다.

잘못된 존댓말을 듣는 손님들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이 어색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한 표현이 여전히 서비스 업종에 난무하는 이유는 유통업계간 서비스 경쟁이 과열된 탓에 무분별하게 존댓말을 쓰려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알아도 어느새 당연한 관행처럼 자리잡혀 있다 보니 이제와 다시 돌이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관행이 일반화되다 보니 일부 손님들의 경우 사물에 존칭하는 표현이 더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느껴진다고 하기도 한다. 분명 잘못된 높임법이지만 사물에 존칭을 쓰지 않으면 화를 내는 손님도 간혹 있는 탓에 잘못된 표현임에도 유통업계는 이를 쉽게 시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엉터리 맞춤법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적이 계속되자 최근 유통업계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롯데백화점은 한글날을 맞아 잘못된 높임법을 시정한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벌여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띄어쓰기는 ‘띄어 V 쓴다’

‘널 이만큼 사랑해’, ‘먹을만큼 먹었어’ 중 띄어쓰기가 틀린 문장은 무엇일까? 후자가 제대로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문장이다. ‘먹을 만큼 먹었어’가 바른 표현이다. 같은 ‘만큼’인데도 어떤 문장에서는 붙여 쓰고, 어떤 문장에서는 띄어 쓰는 이유는 ‘조사’로 쓰이느냐 ‘의존명사’로 쓰이느냐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존명사는 관형사나 다른 수식어가 선행되어야만 쓸 수 있는 명사로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조사는 체언 뒤에 붙어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특별한 의미요소를 첨가하는 기능을 가지며 붙여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명사·대명사·수사 뒤에 위치한 것은 조사, 동사·형용사 뒤에 위치한 것은 의존명사라 생각하면 쉽다. 가령 ‘약속대로’는 명사+조사이므로 붙여 쓰지만 ‘약속한 대로’는 ‘약속하다’란 동사 뒤에 온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사실 띄어쓰기를 틀리지 않고 완벽히 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예외적 조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주’는 붙여 쓰지만 ‘이번 주’는 띄어 써야만 한다. 국립국어원의 원칙에 따르면 지난주는 하나의 단어인 ‘합성어’이지만 이번 주는 합성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끊임없이’는 한 단어로 인정돼 붙여 쓰지만 ‘의식 없이’는 ‘의식(이)+없다’ 두 단어로 띄어 쓴다. 분명 띄어쓰기 원칙을 숙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국립국어원이 한국어 사용자가 좀 더 쉽게 띄어쓰기 원칙을 숙지할 수 있도록 변화시킬 필요성도 존재한다.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한글날’이 되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 할쌔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 배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 펴디 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1446년 반포된 ‘세종어제훈민정음’의 언해본이다. 언해본이 568년이 지난 오늘날 세종대왕의 뜻은 이루어져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한글 덕분에 글과 말을 쉽게 익힐 수 있었지만 쉽게 익힌 만큼 또 헷갈리는 것이 국어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나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자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종대왕님의 뜻대로 우리의 언어생활이 훨씬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조예진 기자 yj951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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