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라는 노랫말을 가진 동요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바나나는 최근 10년간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과일 1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바나나 이전에 과육이 더 크고 훨씬 달콤했던 1세대 바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1세대 바나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1세대 바나나, 그로미셸

바나나 전문가들이라면 그 맛을 모두 그리워한다는 1세대 바나나의 정식 명칭은 그로미셸 바나나(Gros michel Banana)다. 그로미셸은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보다 크기가 크고 더 높은 당도를 갖고 있었다.

그로미셸을 세계에 알린 것은 미국의 대기업들이다. 바나나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바나나 산지는 자메이카였다. 당시에는 배를 타고 자메이카에서 미국까지 바나나를 운반해야 했는데 바람에 따라 10일에서 20일 정도 걸렸다. 그런 어려운 운반상황 속에서 선택된 바나나 종이 바로 그로미셸이다. 그로미셸은 숙성도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유통기한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그로미셸은 운반에 유리한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높은 당도와 달콤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 종이 넘는 바나나 중에서 그로미셸이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로미셸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업가들은 앞 다투어 바나나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나나 사업은 이내 황금기를 맞았다. 다양한 바나나 종이 있던 열대 지방의 수많은 밀림과 경작지들은 그로미셸 바나나 경작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로미셸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나나 재배지에 발생한 파나마 병 때문이었다. 파나마 병은 푸사륨 속의 곰팡이가 일으키는 병으로 바나나의 뿌리를 말라죽게 만든다. 파나마 병은 흙이나 물을 통해 열대지방의 바나나 재배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바나나 기업 중 하나였던 UFC의 수입매출은 파나마 병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UFC는 1950년에 6천600만 달러의 실적을 올린 데 비해 1960년에는 210만 달러의 실적을 올리게 된다.

결국 대기업들은 그로미셸의 대체재로서 파나마 병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Cavendish Banana)를 선택하게 됐고 이 바나나가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다. 캐번디시는 그로미셸과 비교했을 때 당도가 낮고 과육의 크기가 작으며 쉽게 상한다. 하지만 대기업으로서는 파나마 병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었다.

 
후발주자 캐번디시도 멸종위기에 처해

문제는 파나마 병의 변종인 TR4가 현재 캐번디시 재배지에 또 다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미국의 경제방송 매체인 CNBC는 TR4가 아시아, 아프리카의 바나나 재배지에 빠르게 퍼지고 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캐번디시 바나나의 멸종은 시간문제일 것이라 보도했다. 바나나가 이토록 전염병에 취약한 이유는 씨가 없는 무성식물이기 때문이다. 바나나의 재배 방식은 단순하다. 어미 바나나에서 난 알뿌리를 다른 곳에 심어 새끼 바나나가 자라나게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새끼 바나나와 어미 바나나의 유전자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질병 하나가 모든 바나나에 같은 방식으로 전염되는 것이다. 전염속도 역시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바나나를 먹을 수 없는 것일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기업들은 캐번디시의 대체재를 찾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발견되지 않은 야생의 바나나를 찾기 위해 열대우림을 탐색하는 동시에 실험실에서 유전 공학을 통해 새로운 품종의 바나나를 개발하고 있는 상태다. 3세대 바나나는 과연 어떤 맛을 갖고 있을까?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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