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처음으로 소극장 연극을 봤다. 연극 팸플릿을 보던 중 ‘멀티맨’이란 배역이 눈에 띄었다. 다른 배우들은 다 극 중 이름을 배역으로 맡고 있었는데 한 배우만이 멀티맨을 배역으로 맡고 있었다. 처음엔 이 명칭이 이해가지 않았으나 연극을 보면서 이해됐다. 말 그대로 역할이 여러 개라서 멀티맨이었다. 멀티맨은 뚜렷한 캐릭터가 없어 다른 주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억에 남기 힘든 역할이다. 그럼에도 멀티맨은 꼭 필요하다. 소극장 연극의 특성상 배우를 많이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에 다양한 역할을 한 번에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멀티맨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또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옷이야 빨리 움직이면 재빨리 갈아입을 수 있다 쳐도 감정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가 있을까. 아니면 감정이 남아있는데 그 위에 또 다른 감정으로 덮는 걸까. 그렇다면 이전의 감정을 숨겨야 한다. 멀티맨은 연기 중에 감정이 올라와도 장면이 바뀌면 바로 그 감정을 숨기거나 버려야 한다.

감정을 숨기고 또 다른 감정을 연기하는 모습은 왠지 그냥 사람들 사는 세상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지켜야 할 세상이 있어서’ 우리는 감정을 숨기고 다른 감정을 연기하며 산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면서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심지어 공로를 상사에게 뺏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족이 있어서’ 아버지는 멀티맨이 된다. 어머니는 화목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멀티맨이 된다. 집안일로, 친정 문제로 힘들어도 아버지가 퇴근하면 웃는 얼굴로 반겨야 하고 자식들이 하교하면 응석을 받아주고 불평, 불만을 들어줘야 한다. 가족끼리 눈 흘기며 싸우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멀티맨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연애할 때는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는 멀티맨이 아니었을까.

우리 사는 세상에서 멀티맨은 꼭 필요하다. 그들 자신은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렇지 뭐’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있어 세상은 존속된다. 모두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 세상은 전쟁터가 될 지도 모른다. 멀티맨들은 그들 자신의 세상을 지킴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사는 이 세상을 지켜가고 있다. 세상을 지키는 슈퍼히어로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아닌 멀티맨 아닐까.


서현준 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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