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예정자들에게 요즘처럼 심란한 때도 없을 것 같다. 일부는 취직에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오늘도 기약 없이 원서와 씨름한다. 졸업 후 갈 곳이 정해진 소수는 캠퍼스의 마지막 낭만을 아쉬워하지만, 아직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다수는 학창 생활의 마지막 상처에 괴로워한다.

비단 우리대학만의 풍경이 아니다. 대한민국 청춘의 현주소다. 부모 등골 빨아먹으며 거액을 투자한 결과가 지금의 이 ‘꼬락서니’다. 그렇다고 대학생활 내내 논 것도 아니다. 부전공, 복수전공에다 재수강 등으로 학점 관리도 꼼꼼히 했고, 여기저기 알바를 뛰며 먹는 것 입는 것 아껴가며 토익점수도 올려놓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살았건만 교문 밖 저 넓은 세계에 나를 반기는 곳이 단 하나도 없는 이 기막힌 현실. 도대체 내가 성공하면 ‘배 아픈 이’라도 있는 건지 의아하다.

청춘들이여, 당신 탓이 아니다. 당신을 무한경쟁의 정글로 내몰며 당신에게 패배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이 세상에 의혹의 시선을 던져 본 일 있는가. ‘열심히 산 당신, 떠나지 못하는’ 진짜 원인은 소수의 가진 자에게 국부(國富)의 대부분을 흡입하도록 에너지를 ‘몰빵’하는 이 나라의 총체적 시스템에 있다. 수많은 청춘들을 ‘불효자’에다 ‘인생의 패배자’라는 낙인까지 찍어 대학 문을 나서게 하는 이 나라의 실체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나라’다.

원하던 직장을 얻은 졸업예정자들에겐 축하를 보낸다. 한편 그렇지 못한 청춘들을 향해서는 ‘희망의 작은 공’을 쏘아올린다. <신록예찬>에서 따온다.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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