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부총리는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취업에서 필요한 소양으로써의 인문학과 취업을 하고 난 후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교육부의 대학 인문계 정원 감축 기조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을 향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됐다. 이에 취업률을 근거로 인문학을 사장시키는 데 교육부가 이바지하고 있다는 지적과 대학이 취업 준비 학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교육계, “취업용 인문학 필요”

황 부총리는 위 발언에서 취업에 필요한 소양으로써의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별개로 보고 이 둘 사이의 우선순위를 매겼다. 이러한 생각을 황 부총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대는 2008년 5월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2011년 가정교육과 등 인문사회계열 4개 전공을 통폐합하고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의 정원은 늘렸다. 이는 학과 축소 및 통폐합의 기준을 취업률에 두고 판단한 결과로 대학을 기업식으로 구조조정하고 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중앙대뿐 아니라 충남대·목원대·배재대·청주대·경남대도 줄지어 인문대를 폐지하거나 타 과와 통합시키며 대학 구조조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처럼 교육계에선 하나 둘 진정한 인문학이 아닌 취업용 인문학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 아울러 황 부총리가 언급한 인문학도 인문학 본래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


기업, 말로만 인문학적 소양 요구

인문학 사장에 기업도 가담했다. 삼성은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이하 SSAT)’에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며 역사 및 세계사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SSAT에는 ‘개화기에 조선을 침략한 국가 순서’나 ‘고려시대에 발생한 사건의 순서’를 묻는 등 인문학적 소양과는 동떨어진 상식 수준의 문제가 등장했다. LG 역시 ‘LG그룹 인적성검사’에 일반 한자 자격증 시험과 유사한 형태의 단순한 객관식 상식 문제를 출제했다. 이처럼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 시 인문학적 소양을 점검한다는 명목 하에 상식 수준에 불과한 문제들을 출제하고 있다.

기업들의 이와 같은 행보 탓에 인문학적 소양은 다양한 사유와 성찰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입시 공부하듯 암기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선지 인문학을 전공한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기업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삼성·현대차·SK·LG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신입사원 중 인문계 출신의 비율은 20%인 반면 이공계 출신은 80%에 육박한다. 전체 지원자 중 인문계 출신이 60%, 이공계 출신이 40%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인문계 졸업생들이 취업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음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꼭 인문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상식 수준의 문제만 풀 수 있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것으로 간주되니 굳이 인문학도들을 뽑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교양기초연구원 손동현 원장은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다”고 비판했다. 인문학적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이어 손 원장은 “인문학적 소양은 지식(knowledge)보다는 지혜(wisdom)로 평가받아야 한다. 당연히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직무능력이 뛰어나다. 기업에서는 이 점을 유념하고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취업 위해 인문학 버려야”

이렇듯 인문학이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 대학 구성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경영학과 A(동국대 11)씨는 “대학은 다양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인데, 학문의 기준이 취업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된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인문학적 소양은 단기간에 얻을 수 없고 수치로도 전환될 수 없는데 이를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니 당황스럽다”고도 말했다.

우리대학 인문대에 재학 중이면서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는 B(22)씨는 “적성도 적성이지만 취업 때문에 복수전공을 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는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인문학 관련 상식을 갖춘 공대나 상경계열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곁다리 자질로 요구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갈팡질팡 인문학, 어디로 가야하나

인문학의 방향에 대해서도 우려와 당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씨는 “인문학 소외 문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대학평가척도가 취업을 기준으로 산정되고 최근 취업난이 심해지는 등 사회 전체적인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어 대학만을 탓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인문학에서는 학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을 다루다보니 과학이나 기술 분야 같은 실용적인 공부보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오해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에 대해 B씨는 “인문학은 사회와 문화의 발전 동력이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고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손 원장은 “인문학자들조차 그들의 연구를 실적으로 평가하는 대학 구조와 사회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전공 단위로 각 학과가 분절되어 있어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얻기가 어렵다”고 역설하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글·사진_ 박소은 수습기자
thdms0108@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