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순서
1. 네덜란드 건축  2. 플랑드르 미술  3. 베네룩스 국제협력   4. 서유럽 디자인  5. 룩셈부르크 여행기  6. 네덜란드 여행기  7. 벨기에 여행기
‘플랑드르’란 네덜란드, 벨기에, 북부 프랑스를 아우르는 지역을 말한다. 예로부터 이 곳에서는 미술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었다. 플랑드르 지역 특유의 화풍과 유명한 작가들, 그리고 미술 관람문화까지. 미술과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기자가 체험하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전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브뤼셀 왕립미술관의 외벽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미술관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만큼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뜻일 것이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찬찬히 외벽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브뤼셀 왕립미술관’이라는 글자, 한국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든 낯선 땅에서 모처럼만에 한글과 마주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청년과 유럽 미술, 특히 플랑드르 미술과의 만남은 이런 묘한 반가움 속에 시작됐다.


플랑드르 미술의 시작과 마주하다

입구의 거대한 회랑을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각종 ‘종교화’다. 시작 부분에서 종교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브뤼셀 왕립미술관만의 얘기는 아니다. 로테르담의 판 뵈닝헨 미술관,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등 많은 미술관의 초입엔 으레 카톨릭 성인들의 순교 장면, 혹은 성모가 아기를 돌보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중세 시대에 유행하던 그림 소재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한스 멤링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가 있다. 성 세바스찬은 나무에 묶인 채 수많은 화살을 맞은 상태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기는커녕 너무나도 평온해 보인다. 이는 성 세바스찬의 신앙이 승리했음을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경건함과 우아함을 추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이 외에도 이 당시 그림에 나타난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경건하게만 그려져 있다. 심지어는 그림 속 아기들마저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가득 찬 얼굴이 아닌, 세상의 풍파를 꽤나 겪어낸 현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는 훗날 유행하는 귀족들의 자화상에도 잘 나타난다. 당시 유행하던 그림들의 재미있는 특징이다.

한없이 경건하기만 한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을 보다보니 놀라운 점이 하나 보인다. 중세 시대 말에 그려진 그림들이지만 대상의 질감 표현이 굉장히 유려하다. 플랑드르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는 음영 탓일까. 아니면 붓 터치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한 작화 때문일까. 기도를 올리고 있는 귀족의 얼굴은 볼록하게 만져질 것만 같고,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아기들은 그 살결의 보드라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입체감이 풍부한 현대 미술을 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종교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움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물의 고유한 질감을 살려낸 당시 화가들은 미술사의 흐름에 플랑드르라는 이름을 깊게 새겨 넣었다.

얀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빈센트 반 고흐 <연인이 있는 정원, 셍피에르 광장>, 한스 멤링 <성 세바스찬의 순교>,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르네 마그리트 <자유의 문턱에서>, 피터 폴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렘브란트 <야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소 낯선 플랑드르, 너무도 유명한 플랑드르의 화가

다소 지루한 전시가 반복된다. 계속해서 비슷한 그림들만 보다보니 중세 미술에서 느꼈던 흥미도 날아간 지 오래다. ‘이건 그림 하나가 한 장면이 아니네, 이야기가 담겨 있네’, ‘어느 순간부터 신체 비율도 현실적이 됐네’ 등 억지로 흥밋거리를 찾으며 걷다가 발견한 한 그림,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춘다.

거대한 나막신처럼 생긴 욕조. 그 안에 한 남자가 머리에 천을 두른 채 앉아있다. 깃털 펜과 종이로 보아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남자는 쇄골 밑에 칼자국이 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교과서, 혹은 세계사 관련 서적에서나 보던 그림을 직접 마주했다는 사실이 나를 살짝 들뜨게 한다. 다비드는 파리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 중 한 명이다. 중세시대의 플랑드르 화가들이 닦아놓은 기틀 위에 뛰어난 화가들이 많이 탄생한 것이다.
<마라의 죽음>을 뒤로한 채 걷다보니 벽이 온통 붉은 빛인 거대한 전시실이 나온다. 걸려있는 그림들도 굉장히 큼직하다. 종교화다. 하지만 중세 시대의 화풍과는 조금 다르다. 굳이 숨기지 않은 거친 붓 터치는 불꽃을 형상화한 듯하다. 강렬한 질감에 걸맞게 인물들의 표정이나 몸짓도 굉장히 역동적이다. 가까이 다가가 화가의 이름을 확인한다. 피터 폴 루벤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벨기에의 화가다.

루벤스의 작품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에서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었다. 같은 붉은색 벽이지만 웅장하고 강렬하다기보다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이곳.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전시된 거친 질감의 그림들보다는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지만 루벤스 그림 특유의 인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마우리츠하위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따로 있다. 가장 높은 층 마지막 방에 들어서자 노란 옷을 입고 머리에는 하얀 두건을 쓴 소녀가 등을 지고 있다. 소녀는 살며시 뒤를 돌아본다. 눈썹은 없지만 매혹적인 인상이 모나리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소녀보다도 그녀의 귀걸이가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바로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나고 죽은 그. 생전에 많은 네덜란드인에게 사랑받았다던 그는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책갈피, 컵, 우표, ‘진주귀걸이를 한 미피(miffy) 인형’ 등 기념품 가게를 수놓은 온갖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기념품을 보면 네덜란드인들이 베르메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에 있어서 플랑드르의 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근·현대로 이어졌다. 19세기 말 벨기에에서는 초현실주의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르네 마그리트가 태어난다. 현실적인 질감을 가진 물체들, 하지만 위치를 이상하게 설정하거나 착시 효과를 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마그리트 그림의 특징이다. 확실히 현대미술은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맛이 있다. 기괴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점점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그림 자체에 빠져든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마그리트의 탄생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누구나 알 만한 위대한 화가가 태어났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전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그림. 하지만 그의 그림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해바라기>, <활짝 핀 아몬드나무> 등의 정물화도 그렇지만, 그가 그린 풍경화야말로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게 뭘 그린걸까’라며 곰곰이 들여다보는 순간, 그림 속 풍경이 현실이 되어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의 그림에 나타났던 밝은 색채를 머금은 채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이 실로 어울리는 그림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플랑드르 지방은 수많은 유명 화가들을 낳았다. 사람들은 보통 유럽 미술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릴 것이다. 미술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낯설 수 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못지않게 뛰어난 미술 문화를 꽃피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뛰어난 ‘그리기’ 속 나온 편안한 ‘보기’ 문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여기에는 또 다른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의 <야경>이 걸려 있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빛을 이용한 뚜렷한 명암 대비, 그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표정들, 그리고 엄청난 크기.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경외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감상하게 된다. 함께 관람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때로는 함께 온 일행들에게 작품 설명을 해주고, 때로는 그림을 보며 토론을 한다.
이처럼 이 지역의 미술관에 들어서면 온갖 사람들의 수다스런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소음’들은 실상 미술작품을 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소음은 고요하고 어려운 분위기 대신 편안한 느낌을 주며 미술작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

미술관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물론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미술관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미술관들이 더 많다는 것은 의외였다. 사진찍기가 가능해지면서, 미술작품은 고매하고 어려운 존재라는 껍데기를 탈피한다. 가치 있고 위대한 작품들도 때로는 ‘셀카’의 배경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이렇게 자유로운 관람 중에도 플랑드르 사람들이 성숙한 관람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중에도 결코 작품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남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선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는, 소중한 것을 아낄 줄 알면서도 가깝게 다가가는 그들의 문화가 사뭇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글_ 김준태 기자 ehsjfems@uos.ac.kr
사진_ 김준태 기자 ehsjfems@uos.ac.kr /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
서현준 객원기자 ggseossiwkd@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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