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정원>

▲ <정원> 포스터
우리는 종종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쉴 틈 없는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를 위한 공간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드넓은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음을 느끼곤 결국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삭막한 도시에서 현대인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을만한 곳은 마치 영영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원>은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원이 있습니까?” 정원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서울관은 개관 1주년을 맞아 <정원>을 기획했다. 도심 속에서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이상적인 정원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인사동과 삼청동을 연결하는 감고당길 사이로 보이는 높은 하늘을 따라 서울관으로 향했다. <정원>은 서울관 제1·2전시관의 총 4개 영역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원’이라는 전시명을 듣고 떠올릴만한 들꽃과 잔디들은 찾아볼 수 없다. <정원>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원의 경관이 아니라 정원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제1전시관의 ‘만남’ 영역에 들어서자 우리가 인생의 길에서 마주할 법한 경험을 담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벽을 천천히 따라가면 조덕현의 <20세기의 추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가족들과 헤어져 있는 남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남성들로부터 연결된 실타래는 전시장 바닥에 닿아있는데 이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실타래를 통해 우리는 이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남편이자 자식으로 연결됐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려는 작가의 심심한 위로가 아닐까? 

▲ 조덕현의 <20세기의 추억>
한편 ‘쉼’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은 자연을 담은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울창한 숲을 담은 작품 사이를 거닐며 긴장을 풀고 쉬어갈 수 있다.

제2전시관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이곳에서는 ‘문답’과 ‘소요유(逍遙遊)’가 자리하고 있다. ‘문답’에서는 <크리스탄의 승천>과 <불의 여인>을 상영하고 있다. 영상들은 죽음이라는 평소에 생각치 못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진다.
<정원>의 마지막은 ‘소요유’다. 소요유가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백남준의 TV를 이용한 작품부터 로봇이 청산을 날아가는 유쾌한 서정애 의 그림까지. 작가들의 자유로운 감성과 시선을 쫓다 보면 정신이 해방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우리는 도시 속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하지만 정작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당신의 정원을 마주하지 못했다면 서울관 <정원>에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정원>을 둘러보고나면  정원이 있냐는 질문에 “나에게도 여유를 즐길 정원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글_ 류송희 수습기자 dtp02143@uos.ac.kr
사진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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