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도시락'에서 푸짐한 한 끼
진밥, 조금 짠 듯한 반찬, 젓가락과 부딪혀 ‘바삭’한 소리가 나는 마른 김가루.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광경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해준 밥이 그리워도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는 학생들에게 반찬을 준비하고 밥을 짓는 일련의 과정들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이렇게 집에서 나와 살며 엄마의 손맛을 보기 힘든 학생들, 밥 챙겨 먹고 다니기 힘든 직장인들을 위해 집밥을 표방하는 집밥 음식점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아무거나 먹지마세요, 내 몸에 양보하세요

집밥 열풍은 패스트푸드나 즉석식품보다는 집에서 흔히 먹는 소박한 반찬들을 먹고 싶다는 욕구로부터 시작됐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는 집밥 음식점의 슬로건은 ‘잘 먹고 잘 살자, 그게 남는 거’다. 몸에 나쁜 메뉴에 질려 제대로 된 밥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건강식을 차려주자는 의미다. 이 때문에 집밥을 표방하는 밥집의 반찬들에는 조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집에서 먹는 밥처럼 차릴 거라면 몸에 좋지 않은 조미료·미원을 쓰지 않고 엄마가 해 주는 것처럼 균형잡힌 영양소를 고려하겠다는 것이 집밥 음식점의 운영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재료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쏟는다. 남은 재료를 나중에 다시 쓰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루에 판매량을 정해두고 이에 맞춰서 재료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료를 구입하니 낭비하는 일도 없고 반찬의 신선도 또한 유지할 수 있다. 전농동에서 ‘행복한 도시락’이라는 집밥 음식점을 운영 중인 백명실 씨는 “찾아오는 학생들은 밥 안 챙겨먹고 공부하느라 건강이 엉망인 경우가 대다수예요. 그걸 보면서 건강한 재료로 좋은 밥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서 사람을 쓸 필요가 없더라고요. 차라리 인건비를 줄이고 재료비에 더 쓰기로 했죠. 하루에 필요한 양은 정해져 있는데 인건비가 줄어드니 훨씬 좋은 재료를 살 수 있어요”라며 집밥의 장점을 설명했다.

학생들이 질리지 않게 반찬이 매일 바뀌는 것도 집밥 음식점의 특징 중 하나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을 요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을 위해 반찬만 따로 팔기도 한다. 평소 집밥 음식점에 자주 들른다는 이수경(경희대 12) 씨는 “매일 즉석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도 질리고 밥 때가 되면 엄마가 해준 집밥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밥은 어떻게 만들었는데 같이 먹을 반찬이 없어 난감하더라고요. 집밥 음식점에서 그날 만든 반찬을 사와 집에서 한 밥이랑 같이 먹기도 하고 그냥 아예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해요. 집에서 먹는 밥맛도 나고 괜히 더 건강해지는 기분도 드는 것 같아요”라고 집밥 음식점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 집밥 음식점에 걸려있는 문구
▲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

허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채워주는 집밥

사람들이 집밥을 찾는 이유가 건강에 더 좋아서 혹은 반찬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웰빙을 추구하는 음식점이나 반찬 걱정을 덜어준다는 반찬 가게들은 이미 나온지 오래다. 굳이 ‘집’밥 음식점이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대학 김강산(국문 08) 씨는 “취업이나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많을 때 집밥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으며 아주머니랑 얘기하면 기분이 나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혼자 집에서 우울하게 고민해봤자 해결되지 않거든요. 또 예전에는 집에는 먹을 밥이 마땅치 않아서 굶고 수업에 가기 일쑤였어요. 그게 싫어서 집밥 음식점에서 밥을 챙겨먹기 시작했어요. 아침 수업 전에 가서 한 끼 챙겨먹으면 하루 종일 속도 든든하고, 저녁에 수업 끝나고 집에 가서 따뜻한 밥 한 그릇 먹고 들어가면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집밥을 먹으며 힘을 얻었던 경험들을 떠올렸다.

집밥 음식점에서 힘을 얻어가는 것은 손님들뿐만이 아니다. 집밥 음식집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았던 학생들에 대해 묻자 백 씨는 “혼자 와서 밥 먹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어느 날은 그렇게 공부하던 학생들이 기술고시를 보러 간다며 시험 중간에 먹을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시락을 싸줬는데 그거 먹고 힘나서 시험 잘 쳤다고, 시험 붙었다고 얘기하는데 제가 더 기쁘고 찡하고 그랬어요. 진짜 아들이 붙은 것 마냥 기분이 좋더라고요”라며 학생들과 마음을 나눈 따뜻한 일화를 밝혔다.

김 씨와 백 씨의 경우처럼 모든 집밥 음식점에서 손님과 주인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집밥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 공허감 또한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이다. 집을 나와 사는 사람에게 집밥이란 특출나게 맛있는 밥이 아니다. 그들에게 집밥이란 가족들과 숟가락, 젓가락을 맞대고 나눠먹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순간을 곱씹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집에서 접하던 소소한 밥과 반찬이지 호화스러운 음식이 아닐 것이다. ‘밥집’이 아닌 집밥 음식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상 바쁘게 살아가야 하고 우리가 아닌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고민거리들이 많지만 그래도 밥 한 끼 넉넉하게 챙겨 먹으며 고민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가졌다면 일단 따뜻한 집밥 한 그릇 비우며 마음부터 채워보자. 뚝딱 해치워 버리는 즉석식품,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 보다는 기분이 사뭇 좋아질 지도 모른다.

 


글·사진_ 박소은 수습기자 thdms010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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