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남편, 사위.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캐릭터들은 대개 가정에서 만나볼 수 있는 친근하고 다정한 모습의 남자들이다. 대표 육아예능 프로그램인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송일국은 세 쌍둥이의 밥을 준비하고, 양 팔에 애들을 안아 병원에 데려가고, 친구같이 놀아주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게 혼을 낼 줄 아는 이상적인 아빠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한편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시댁살이’로 대표되는 가부장제의 모습 대신 처가살이 속 사위와 장모 간의 친근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자기야-백년손님>의 출연자들은 처가살이를 통해 대개 권위적인 남편의 모습에서 벗어나 아내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남편으로 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중문화는 이른바 ‘가정적인’ 남자를 보여줌으로써 여권 신장과 함께 대두된 육아 및 가사의 공동부담과 그로 인한 양성 평등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제가 공고하게 다져온 ‘내조는 아내의 영역’이라는 관습을 깨고 집안일에 적극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가부장’의 역할은 가정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바깥’ 일에만 국한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능력을 떠나서 설거지 같은 작은 ‘집안’일에서부터 아이의 육아와 교육까지도 분담하는 ‘가장’의 모습이 이상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가정적인 남자 바라지만 가정에만 있는 건 문제...?

하지만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적인 남자의 역할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권위적이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성을 ‘남자답다’고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적 태도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전적으로 양육에 뛰어들고 싶은 남성이라 하더라도 무능하거나 아내한테 잡혀살 거라 여겨지는 ‘남자’ 전업주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남성 직장인은 3.3%에 불과하다. 용기를 내 육아 휴직을 신청하려해도 돌아오는 말은 ‘네 아내가 애 낳지, 너가 낳냐’라는 매몰찬 한 마디다.


남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남성학

남성학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혹은 반박하기 위해 출발했다. 육아와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남성이 맡더라도 ‘여성적’이라는 말을 들어야하는 사회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남성적인 것은 무엇인가’, ‘과연 실재하는 개념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학의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학도 실상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 고정적인 성역할을 타파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한 갈래다. 때문에 남성학은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어떠한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솔직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이 주창했던 ‘여성의 가사로부터의 해방’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괜한 거부감에  ‘가장으로서 느끼는 경제적인 부담도 큰데 집안일까지 신경쓰라는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남성학은 현재 우리나라의 중장년층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떠안는 것도, 반대로 같은 나이대의 여성들이 가사에 온전히 희생하는 것도 모두 당연한 일이 아니며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의무’로 이름 붙여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대학에서 가족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도시사회학과 이윤석 교수는 “남성학은 남성과 여성이 지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 기대에서 벗어나 개인이 가진 욕구를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남성답거나 여성다운 것이 아닌 인간다운 것을 추구하도록 고민하는 학문”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성 전업주부는 무능력한 가장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육아와 가사를 선택한 개인”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남성학은, 나아가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이라는 거창한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애써 거짓으로 내 모습을 꾸며낼 필요가 없게, 또 내가 온전히 ‘나’다운 모습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한번쯤 용기내 말해보자.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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