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다. 미안하지만, 페미니스트 맞아요” UN 양성평등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여배우 엠마 왓슨이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전 세계에 전한 말이다. 최근 페미니즘은 유례없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문제는 몇몇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감’과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기에 촉발된 관심이란 것이다. 그래서인지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예전보다 뜨거워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서울시립대신문은 페미니즘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페미니즘과 관련한 수많은 담론 중 성차별주의를 조장하는 ‘가부장제’에 주목한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당신도 당당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최근 tvN 예능 <삼시세끼-어촌편>이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성황리에 종영했다. 그 인기의 중심에는 배우 차승원이 있었다. 어떤 재료든 군침 도는 요리로 척척 해놓으며 탁월한 살림살이를 보여준 그에게 시청자들은 ‘차줌마(차승원+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왜 우리는 살림 잘하는 사람에게 ‘아줌마’란 별명을 붙여줬을까? 이는 우리가 살림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여성적인, 특히 아줌마 같은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차승원이 차저씨, 차삼촌도 아닌 차줌마란 별명을 갖게 된 이유. 어쩌면 페미니즘이 이에 대한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의 시작, 젠더의 억압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과 달리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적확한 정의는 ‘성차별주의와 이에 근거한 착취·억압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다.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젠더’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젠더의 개념을 알기 위해 여기 가상의 남성 A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벌고 있는 변호사다. 만약 그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다면, 결혼정보회사는 그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아마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 그가 경제력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A씨를 여성으로 바꿔보자. A씨는 여전히 결혼정보회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아마 남성의 경우 만큼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옆의 표를 보면 남성의 경우 변호사란 직업이 좋은 평가 기준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경우 변호사보다 아나운서, 연예인과 같은 직업이 높은 평가를 얻는다. 사실 직업이 없어도, 미스코리아 ‘미’에 뽑히면 변호사보다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에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러한 ‘성차별’적 기준은 사회·문화상이 반영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차별을 만들어 낸 진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에서는 이를 ‘젠더’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젠더는 생물학적인 성과 달리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적 정체성을 의미한다.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개인에게 학습될 때, 우리는 이를 젠더라고 부른다. 우리대학에서 <여성학의 이해>를 가르치는 이경아 교수는 “젠더는 옷처럼 자유롭게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피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며 “젠더는 매우 깊게 각인되는 내재화된 정체성”이라고 설명한다.

젠더는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적 혹은 여성적 이미지에 개인을 가둔다. A씨의 상황처럼 뚜렷이 정해진 남성적 혹은 여성적 이미지는 성적 차별을 만들어낸다. 즉 젠더가 우리의 행동을 무의식중에 억압하는 것이다.

 
가부장적 구조가 만드는 억압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 이 말은 페미니즘 운동을 비유하기에도 적절한 말이다. 전 사회에 퍼져있는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한 가정이 바뀌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는 가부장적 구조를 타파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가부장적 구조란 사전적 의미와 조금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본래 가부장적 구조의 사전적 의미는 ‘가장이 주체가 돼, 가족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페미니즘에서는 ‘성차별주의로 말미암아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에 두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 가부장적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젠더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A씨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자. <표>에 제시된 여성의 직업을 평가하는 기준을 살펴보면 높은 평가를 받는 직업은 남편을 내조하기 유리한 직업임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남성성은 생계부양책임·경제적 능력과 연결돼 있고, 여성성은 보살핌 지향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차이가 가정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거나 스스로 복종하는 가부장적 구조를 가져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가부장적 구조 속에 고통을 받는다. 가령 우리나라의 많은 ‘며느리’들은 명절날이면 과도한 가사노동으로 명절증후군을 겪는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는 여성할례, 조혼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라를 불문하고 어디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이 행사하는 모욕적인 언사나 신체적 폭력 등에 노출되는 여성들이 있다. 여성을 억압하는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이 사실 가부장적 구조라는 같은 맥락 안에서 벌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구조에 고통 받는 것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가부장적 구조는 남성에게는 그 나름대로 가부장적 남성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벨 훅스는 이러한 가부장적 구조가 유아적이라고 비판하며 ‘가부장적 구조 내 남성들은 오로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특권에 자연스레 의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 역시 가부장적 남성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가부장적 남성성은 결국 개인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성차별주의로 발생한 가부장적 구조가 다시 성차별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다들 문제아들의 행동을 고쳐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 나오는 많은 아이들은 부모가 알게 모르게 했던 행동·습관 등을 보고 배워 문제행동을 일으킨다. 가부장적 구조가 확산되는 과정은 마치 문제아들이 부모의 나쁜 습관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자란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성차별적 행동을 함으로써 자식에게 가부장적 사고를 학습시키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남겨진 과제

그렇다면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벨 훅스는 가부장적 젠더를 대신할 대안적 남성성·여성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여성성의 경우에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적 남성상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대안적 남성성은 여성화된 남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벨 훅스는 대안적 남성성에 대해 ‘자기라는 독특한 존재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기애가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위한 노력이 앞으로 페미니즘의 과제가 될 것이라 말한다. 

사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페미니즘의 여러 담론 중 극히 일부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함께 논의해야 할 많은 주제들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남성·여성 가릴 것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참고_ 벨 훅스, 박정애 역, 『행복한 페미니즘』, 백년글사랑,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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