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속 유럽연합(EU)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베네룩스(benelux)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기자는 관세동맹에서 경제연합으로 발전해 유럽연합으로까지 확대돼 온 국제적 협력의 결과물을 베네룩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기사는 유럽연합의 본부와 이사회가 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유럽연합을 창설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된 네덜란드의 최남단 마스트리히트,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를 비롯해 여러 국제금융기관이 자리한 룩셈부르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주위에 막강한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유럽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베네룩스에서 유럽연합의 현재를 느껴보자. -편집자주-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놀랍기도, 아쉽기도 했던 점은 국경을 넘어다녀도 출입국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려 3주 동안 베네룩스 3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기자의 여권에는 네덜란드 도장만이 찍혀있을 뿐이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다녀왔다는 흔적은 전혀 남지 않는다. 기차로 국경을 넘나들 때, 그 기차 안에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득할 때, 기자는 사회 시간에 달달 외웠던 유럽연합의 의의나 경제적 영향력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이 유럽연합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동전은 각국에서 따로 찍어내도 여전히 같은 가치의 유로화로 통용된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각국의 동전을 모으는 것도 하나의 취미라는 말에 괜한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유럽연합’의 고향, 마스트리히트

이른 아침 나른함을 느끼며 탑승한,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로 떠나는 기차 안, 일행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마스트리히트의 시청 앞에는 유로화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다” 반쯤 감긴 눈을 감으며 혼자 생각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마스트리히트는 유로화의 탄생지라고 봐도 무방한 곳이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7일, 마스트리히트 시청에서는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벨기에와 독일의 국경에 맞닿아있는 네덜란드 변방의 소도시에서 체결된 이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이라는 공룡이 탄생했다. 유럽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민이 가능한 ‘쉥겐조약’이 체결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를 꼽자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스트리히트조약 이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3국을 돌면서도 환전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이날의 역사 덕분이다.

이런 생각을 되뇌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마스트리히트 시청 앞에 도착했다. 불현듯 아침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마스트리히트의 시청 앞에는 유로화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다” 나는 그 기념물을 보고자 마스트리히트 시청의 외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기념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열린 간이시장들만이 시청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부터 없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찾지 못한 것인지…. ‘유럽 연합의 시작점에 왔지만 별다른 건 없구나’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남긴 채 마스트리히트를 떠났다.


 
연합의 심장은 브뤼셀에, 가히 ‘유럽의 수도’라 부르다

국경을 넘나드는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맞이한 브뤼셀의 밤은 어두웠다. 분명 시내 한복판에 내린 것 같은데 네덜란드 도시들에 비해 상당히 어둡고 좁은 탓에 숙소를 찾기까지 한참을 긴장 속에 걸었다. 과연 이곳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맞을까. 이런 의문을 떨치기 힘들었다.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은 종종 유럽의 수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첫날 걸어다닌 구시가지가 아닌, 비교적 최근에 정비된 브뤼셀 동쪽 지역으로 이 거리 인근에는 여러 유럽 연합 기구들이 자리해있다. 지하철을 타고 슈만역에서 하차해 역 밖으로 나오자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수학 기호 ‘x’자 형태로 배치된 가로 세로로 창살이 빼곡한 건물, 바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Le Berlaymont’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에서 각종 정책의 집행을 처리하는 행정부 역할을 담당한다. ‘Le Berlaymont’는 유럽의 경제적·정치적 통합에 대한 조약을 수호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상징이다.

유럽연합 본부의 맞은편에는 유럽연합에서 입법부 역할을 담당하는 유럽연합 각료이사회 건물이 있었다. 각료이사회 건물 입구에 있는 3개의 유럽연합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모습이 인상 깊다. 유럽연합 각료이사회 건물에서 ‘생껑뜨네흐 공원’을 왼편에 끼고 걸어가 벨리아흐가에 들어서면 정말 유럽의 수도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유럽 경제·사회 이사회, 유럽 인적자원·안보이사회, 지역 이사회 등의 건물이 위치해 있다. 거대한 유럽연합의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대리석으로 가득한 이 공간은 뭔지 모를 긴장감을 준다. 말을 타고 거니는 경찰들 모습에서 근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슈만역 인근은 전체 8,650㎡의 면적에 유럽연합 관련 건물이 60개도 넘게 입주해있다고 한다.

이처럼 실제로 유럽연합 관련 건물들이 집중된 이 곳은 흔히 ‘EU지구’라고 불린다. 앞서 기술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와 각료이사회, 각종 유럽연합 산하 이사회들 외에도 기타 유럽연합 산하 사무소, 유럽연합 공무원 숙소, 로비스트 사무실, 유럽학교, NGO 사무실 등이 위치해 있다. 브뤼셀 전체 사무실의 30% 정도가 유럽연합 사무 관련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니 가히 유럽의 수도라 부를만 하다.


▲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본부 ‘Le Berlaymont’
민주주의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유럽 의회 Parlamentarium

유럽연합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 의회(EP, European Parliament)다. 벨리아흐가에서 유럽 경제·사회이사회 건물을 왼편에 끼고 가다보면 웅장한 규모의 유럽 의회를 발견할 수 있다. 4억5천만 유럽 시민을 대표하는 유럽 의회 건물은 ‘Parlamentarium’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건물 내에 설치돼있는 전광판에서는 유권자들의 투표를 적극 독려하는 문구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유럽 의회의 역사에서 직접선거 제도의 도입은 큰 변화다. 1979년 유럽 의회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의원들이 각자의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유럽 의회는 그저 유명무실한 기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접선거가 도입되고 유럽연합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의회의 영향력은 무수히 커졌다. 끊임없이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전광판은 자신을 보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역사를 끊임없이 인지시키고 있었다. 직접선거를 통해 의회에 힘을 실어준 유럽 시민들이야말로, 오늘날 유럽 의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각국의 국기가 펄럭이는 유럽 의회 광장 한복판에 서있으니 유럽 시민들이 투표를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가 느껴졌다.

유럽 의회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동상과 유럽 연합 가입국의 국기들과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파란색 유럽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의 공원에는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유적이 있었으니 바로 1989년 붕괴된 베를린 장벽의 일부분이었다. 베를린에서 일부를 가져와 유럽 의회 근처에 전시를 해놓은 것이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유럽연합이 대륙의 동쪽으로 확장할 수 있었으니 이를 기념하자는 의미였다. 베를린 장벽, 다시 말하면 철의 장막의 일부분이다. 말이 철의 장막이지 실제로 보면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미약한 존재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존재하던 공원. 가히 세계 2차 대전의 끝과 냉전의 종식, 그리고 유럽의 통합을 한 번에 느껴볼 수 있는 자리라 할 수 있다.


▲ 유럽의회 한쪽에 자리한 유로화 여신상
GDP 1위의 금융강국, 유럽의 여행은 룩셈부르크

유럽연합의 시초였던 베네룩스 국가답게 룩셈부르크에도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자리해있다. 룩셈부르크 왕궁의 담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유럽연합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브뤼셀에서 봤던 건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대리석과 통유리로 멋을 낸 큼지막한 현대식 건물이 아닌, 역사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외관이다.

작은 도시 국가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GDP 1위를 자랑하는 부국이다. 국가 규모가 작고 인구수가 적어 통계적으로 유리한 탓도 있겠지만 룩셈부르크 경제 부흥의 이유를 그렇게만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이들의 부유함은 브뤼셀에서 그리 멀지않은 지정학적 위치, 규제를 한껏 풀어헤치며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부국이라지만 겉으로 보기에 룩셈부르크는 확실히 뭔가 심심하다. 중세시대의 요새로 뒤덮인 구시가지를 빼면 룩셈부르크는 별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는 나라다. 시내에도 고풍스러운 건물이 잔뜩 있을 뿐, 흔히 ‘금융’하면 생각하는 높은 빌딩들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건물들의 면면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작은 박물관일까’라는 생각에 한 건물의 입구로 다가서면 어김없이 보이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의 로고다.

다국적 기업이 여럿 자리해 있어서인지 외국인 거주 비율도 40%에 달한다는 룩셈부르크. 나라와 수도의 이름이 같은 이 소국에서 각기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게 마냥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감내해왔기에 지금의 베네룩스가, 또 유럽연합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_ 서현준 객원기자 ggseossiwkd@uos.ac.kr
사진_ 김준태 기자 ehsjfems@uos.ac.kr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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