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누굴까. 매일 4시 15분이면 내게 꽃을 가져다주는 사람’
영화 ‘데이지’에서 정우성(극중 박의)은 매일 4시 15분 짝사랑하는 전지현(극중 혜영)에게 데이지 화분을 선물한다. 꽃만 두고 사라져 버리는 그를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속에도 어느새 데이지 꽃을 닮은 사랑이 피어난다. 꽃이라는 소재가 가져오는 특유의 로맨틱함 때문인지 아니면 선남선녀의 사랑이 부러운 것인지, 왠지 오늘 기자에게도 꽃이 배달됐으면 싶다. 사랑해 달라는 말까지는 안 할 터이니 내게 꽃을 선물할 사람, 거 어디 누구 없소?


배달, 어디까지 해봤니

꽃을 선물 받을 방법, 여기 있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 우리말로 ‘정기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정기구독을 의미하는 ‘서브스크립션(subscriotion)’과 상업을 뜻하는 ‘커머스(commerce)’가 합쳐진 말로 구매자가 일정한 비용을 내면 해당 업체가 임의로 상품을 선정해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는 상거래를 말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신문이나 우유 따위가 배달돼 오는 것과 같이 화장품, 꽃, 액세서리, 의류, 식재료, 장난감 등이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네가 나의 니즈(needs)를 알아?

평소 인터넷 쇼핑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봄맞이 원피스를 한 벌 마련코자 야심차게 검색을 시작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내려도 내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스크롤바의 압박뿐이다. 이에 더해 고질적인 ‘선택 장애’는 당신을 더욱 더 괴롭게 한다. 섹시한 블랙 저지드레스를 할인한다는 팝업창이 뜨니 여태 골라놓은 쉬폰 원피스의 구매가 망설여진다. 늘 바쁜 현대인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정보를 선별해 내고 비교적 고품질의 제품을 선택하기까지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쇼핑이 귀찮거나 제품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쇼핑의 전 과정을 대행해 준다. 따라서 소비자는 최소의 시간과 노력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직접 제품을 선별해 배송해주기 때문에 소비자가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박경난(24) 씨는 “꽃을 사려고 해도 어떤 꽃을 사야할지 몰라 난감한 적이 있다. 그런데 플라워 서브스크립션을 이용하면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해서 골라주니 직접 고르는 것보다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 지난 26일 배송된 작업실 by 꽃, 빵의 정기배달 상품
구매 대행을 넘어 제품 탐지기 역할까지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비단 쇼핑에 소극적이거나 쇼핑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적극적인 소비자들에게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제품 탐지기’로서 이용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맛보기 구매’를 가능하게 해준다. 한 화장품 업체의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서비스를 이용한 서양희(24) 씨는 “피부가 예민해서 피부 타입에 잘 맞는 화장품만을 써야한다. 하지만 모든 화장품을 정품으로 구매하여 써보기에는 가격부담이 만만찮다. 그런데 ‘00박스’ 같은 경우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여러 브랜드의 샘플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내 피부에 맞는 제품을 찾는데 도움이 됐다”며 실제 00박스에서 보내준 트러블용 비누 샘플이 피부에 맞아 정품까지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삭막한 일상에 설탕 한 스푼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또 다른 매력은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배달된다는 점이다. 어린이날 선물을 받을 나이는 지났고 이제는 기껏해야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만 선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집이나 학교로 잊고 있던 상품이 배달돼 온다고 상상해 보자. 꽃 정기구독을 하고 있는 박 씨는 “평소에 꽃을 사야지하면서도 잘 안 사게 되는데 서비스를 이용하니 매번 선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기분전환하기에는 참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꽃 정기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작업실 by 꽃, 빵’의 박지예 대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작은 꽃으로 고객들이 행복해지는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꽃집에 오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분들이 있는데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를 운영하면서 물건을 주문하듯 꽃도 인터넷으로 편하게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기자도 작업실 by 꽃, 빵의 꽃 정기구독을 통해 지난 26일 꽃 한 다발을 받아보았다. 분홍리본으로 장식된 박스 안에 오늘은 어떤 꽃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봄을 닮은 데이지일까, 파스텔 빛의 라넌큘러스일까? 상자를 여니 산뜻한 꽃향기와 함께 노란 프리지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렇듯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랜덤박스’ 형식으로 배달된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는 주문한 상품의 종류만 알 뿐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이 들어있는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상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엔 무슨 상품이 올지 기대하는 것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제품을 받아보았을 때의 경험은 그 자체로 신선하게 다가오며 하나의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취향의 분석 VS 취향의 강요

현대인들의 생활을 한층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에도 우려되는 점이 있다. 공급자 주도의 소비방식이 소비자들의 소비주권을 포기하게끔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피해사례로 서 씨는 “매번 같은 비용을 내지만 이따금씩 불필요한 제품들도 배송돼 쓰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소비자의 개성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이러한 판매방식은 소비자의 주체적인 소비를 방해할 뿐 아니라 공급자가 소비를 주도하게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급자의 가격 인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고유의 편리함을 무기로 현대인들의 새로운 소비방식으로 점차 보편화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글·사진_ 김선희 기자 doremi61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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