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 해 동안의 스위스 프리브르 대학 연구년 생활을 접고, 귀국한 후에 나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스위스라면 어떻게 처리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위스에서의 1년간 체류는 개인적인 연구와 더불어 멋진 알프스 산들과 베른, 몽트뢰, 루체른, 생트갈렌 같은 아름다운 도시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4위의 선진국으로서의 사회체제나 국민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물론 스위스 비밀은행과 유럽의 부자들을 유혹하는 (노키아 회장의 국적을 스위스로 바꾸게 한) 부자 세금우대 정책은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스위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자기나라 국민들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여러 정책과 의식의 수준은 우리가 반드시 본받을 필요가 있는 스위스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이 지면을 통해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편리성을 따르지 않고 완벽함과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스위스의 모습이다. 스위스에 살게 되면서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거의 모든 상점들이 평일 저녁 6~7시 경이면 문을 닫고, 토요일에는 오후 4시에 문을 닫으며, 공휴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등, 평소 내가 살아오던 세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불편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 슈퍼마켓들이 너무 일찍?문을 닫아서 불편하다’는 의견으로부터 발의된 ‘대형 슈퍼마켓의 개점 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자’는 안을 놓고 실시된 2010년 11월 28일의 제네바 시민투표가 반대 56.2%, 찬성 43.8%로 부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자신들이 1시간 더 여유 있게 장을 볼 수 있는 편리함보다는 노동자들이 7시에 퇴근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편리성 위주로 사는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비록 부결되었지만 ‘한 기업 내의 최고연봉과 최저연봉의 차를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과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변호사를 선임시키자’는 국민투표 안건들도 있었다. 그러한 안건들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냐의 여부를 떠나서, ‘다함께 그러한 것들을 고민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것이었다. 시시콜콜한 국민투표 말고도 다른 유럽을 달릴 때는 슬쩍 규정속도를 넘기던 차들이 스위스 안에만 들어오면 속도를 지키도록 만드는 끈질긴 규제 시스템과 과속 차량에 대한 벌금을 연봉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것 등은 치밀한 스위스의 정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2006년 10월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건이 있었음에도 올 2월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건이 또 일어난 것을 보면서 항상 뒷수습만 하고 비슷한 대형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스위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안개 상습발생 구역에 감속 유도형 전광판, 경광등, 과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더불어 강력한 벌금과 처벌제도 시행 등의 치밀한 규제 시스템으로 다시는 같은 종류의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조윤희(수학과 교수)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