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 보자. 내가 뱉은 말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이는 내가 뱉은 말의 이해가 오롯이 상대방에게 맡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가끔 상대방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내가 바라는 대로 이해하지 못해 종종 난처해하고는 한다.

특히 이것이 나의 속 깊은 진심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일 때가 더욱 그렇다. 혹은 잘못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이처럼 상대방이 내 발화의도를 ‘이해’ 하지 못한다고 느껴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말의 의미가 상대방에게도 그러할까? 생각은 자기만의 것이라고 치더라도, 우리는 왜 '말'을 자기만의 것인 것처럼 사용할까? 내가 사용하는 말들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다른 맥락의 말로 다가 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상대방의 말을 통역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외국어를 모국어로 번역해야하는 성질의 어려움이 아니라, 각자의 맥락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가 '잘 소통하고 있다'는 모습은 서로가 서로의 말을 머리로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종의 실천들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우리는 상대방이 기뻐할 때에는 같이 소리 내어 웃고, 슬퍼할 때에는 위로를 건넬 수 있다. 더 나아가 대화를 통해 상대방과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잘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대화는 그러기에 있는 것이다.


이희민(경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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