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의 열풍을 타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일까요. 지난해 12월 29일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습니다. 일명 ‘장그래법’이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35세 이상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계약기간 연장을 원할 경우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계약을 연장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 이름만 봐서는 고용을 장기적으로 보장해주는 법 같지만 사실상 피고용자들을 비정규직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정부의 말을 들어봅시다. 4년 동안 일하면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쉬울 것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에서 제시한 수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에 3년 종사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22.4%에 불과합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53.8%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전체 정규직 일자리 수는 늘리지 않은 채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만 늘린다고 해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4년 계약을 체결하는 근로자들에게 ‘원하는’ 고용 보장을 해주겠다며 생색 내는 처사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면 근로자에게 퇴직금과 추가기간동안 받은 임금의 10%를 이직수당으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더 이익이라고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런 장치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정규직에 비해 인건비를 절반이나 절감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계약기간이 만료돼도 이직수당을 줘버리면 그만입니다. 이쯤 되면 비정규직이 아닌 기업들을 위해 만든 법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만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이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장님을 만나게 된다면 꼼짝없이 8년 동안 비정규직에 묶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기간제뿐 아니라 파견직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항목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아마 경제 수완에 밝은 사장님이라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파견으로 4년 동안 계약한 후 다시 기간제로 4년을 더 계약해 8년 동안 인건비를 절반이나 절약하는 묘안을 내놓으실 겁니다. 만약 장그래가 이런 사장님을 모시게 된다면 인턴 장그래를 거쳐 파견직 장그래, 기간제 장그래라는 사원증을 거의 10년 동안 받을 수 있겠네요!

정부가 <미생>을 너무 감명 깊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직접 장그래를 대량생산하려고 팔을 걷어붙였으니 말입니다. 정부 제작지원·각본·연출의 <미생> 시즌2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박소은 수습기자 thdms010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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