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이네.’ 최근 이 말을 접할 기회가 부쩍 많아진 것 같다. ‘노답’은 ‘답이 없다’는 말을 축약한 신조어이다. 단 두 글자만으로 어찌할 수 없어 답 없는 심정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까닭에 무언가 막막한 일이 생길 때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됐을 정도다.

그런데 때때로 이 노답이란 말이 너무나 기분 나쁜 비수로 꽂힐 때가 있다. 바로 상대의 의견에 대해 노답을 표할 때이다. 그 두 글자 안에는 ‘네 말은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깊은 혐오가 담겨져 있다. 노답앞에는 어떠한 담론도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엇나간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토론할 필요는 없어진다.그 사람의 말은 그저 소음일 뿐이니까.

얼마 전 한 대학의 학보사 지면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에 대한 기자의 칼럼이 게재됐다. 기자는 칼럼을 통해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친북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참가자들은 진정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참가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해당 칼럼은 크게 논란이 됐고 결국 학보사와 해당 기자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다.

분명 해당 칼럼의 주장은 정당하지 못했다. 잘못된 표현을 했고, 섣부른 판단으로 사실을 곡해했다. 마땅히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할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그저 ‘노답’이라고 규정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말서를 써라’는 등 기자와 학보사에 쏟아진 비난은 지나치게 원색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학보사의 기자가 기성언론의 보수적 논조를 답습하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학보사의 기자가 보수적인 시각으로 칼럼을 쓰는 것은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칼럼이 어떠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어떠한 점이 곡해됐는지 비판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국가적 재난에 대해 첨예한 좌우 대립이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분명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월호 논쟁에 있어 서로를 ‘노답’으로 규정하고 있는 모습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는 그 어느 문제보다도 분명한 '답'이 요구되는 문제다. 토론을 포기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태도로는 논의가 발전되지 않는다. 더이상 노답으로는 안 된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합리적인 비판이 필요할 때다.

김태현 학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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