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지난달 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2차 대전 당시 전사한 미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혔지만 한국 침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주변국들과의 참된 화해와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식이나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소수이긴 하지만 세계 여기저기에서 아베 정부의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역사의식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베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다. 물론 아베는 이런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우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쇼를 하고 난 뒤 아시아 나라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며 가슴에 손을 얹고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는 또 다른 쇼를 계속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사적 세력을 늘여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나라라고 판단하고 최근 일본의 군사적, 정치적 변화에 호감을 보였다. 미국이 단지 우리의 우방이라는 관계를 넘어 도덕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에 대한 훈계를 일본에게 한번쯤 할만도 한데 그냥 뒷짐만 지고 있다. 더욱이 중국 시진핑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주도국 대표로서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거침없이 아베총리의 손을 잡은 이후 그의 행보가 하늘을 찌른다. 이렇게 미국이나 중국이 마치 친구처럼 나오니까 상대적으로 한국은 힘이 없는 듯 보였나 보다.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베의 속내가 다 보인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있어서는 안되는 - 유치하게 양심을 팔고 친구의 슬픔을 외면하는 - 일이 국가사이에 발생하고 있다니 매우 안타깝다.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 언제든지 친구를 버릴 수 있고 또 어제의 적을 오늘의 친구로 만들어야 하는 세계정세에서 우리나라도 실리를 위해 외교적 잣대를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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