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역사 도시의 민낯

한강을 따라 서있는 고층빌딩과 산등성이에까지 빼곡한 아파트들은 낮의 서울을 답답하게 만든다. 반면 밤의 서울은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남산과 N서울타워는 외국인이 선정한 서울의 명소에 항상 포함돼 있다. 미디어 속에서도 한강 유람선 프러포즈는 고전처럼 여겨진다. 드라마 속 거창한 프러포즈까진 아니어도 한강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이 도시의 낭만이다.

 
하루 중 반은 낮, 나머지 반은 밤이다. 야경이 주경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낮에는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 건물들이 모여 만든 스카이라인이 도시경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야경은 단순히 조명이 켜진 건물들이 모여 있는 모습만은 아니다. 한 건물이 유달리 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건물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야경이 만들어진다. 보기 좋은 야경은 도시경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런던, 파리, 프라하, 홍콩, 상하이 등 여행지로 유명한 도시들이 모두 야경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은 낮뿐만 아니라 밤의 도시경관 역시 관광자원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야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소인 남산과 N서울타워는 그 자체로도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남산에 보존돼있는 서울성곽과 서울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높게 자리한 N서울타워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은 야경을 보러 남산에 올라가는 과정까지도 즐겁게 해 준다.

 
또한 한강에 자리한 30개의 다리들은 각각 다른 조명경관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1km가 넘는 길이의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개분수가 있는 반포대교나 뒤편의 고층 아파트와 다리의 조경이 어우러지는 청담대교처럼 멋진 조명 경관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도 있다. 낮에는 한강변을 따라 자리한 아파트들이 마치 벽처럼 답답해 보이지만 오히려 밤에는 다른 시설물과 함께 야경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

서울의 야경은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서울의 야경은 1997년부터 ‘서울시 야간경관개선사업’을 통해 20여년 전 부터 정책적으로 차근차근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급격한 경제발전 속에서 일정한 계획이나 정책 없이 경쟁하듯 건물을 올려 제멋대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주경과 대비된다.

인공적인 건물뿐만 아니라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경관에 큰 영향을 받는 주경과 달리 인공적인 조명을 통해 만들어지는 야경은 어떻게 계획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내년 서울에서는 국제도시조명연맹 연례총회가 열린다. 국제도시조명연맹은 66개의 도시가 가입해 회원 도시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도시 빛 정책, 조명 신기술, 공공조명의 에너지절약 방법을 공유하기 위한 단체다. 서울시는 한강교량이나 문화재 등 야간경관을 성공적으로 조성한 사례를 강조해 연례총회 유치권을 얻어냈다. 지난 2009년 국제도시조명연맹 회원도시의 시장 40명이 서울을 방문해 서울의 야경을 직접 확인한 결과다. 이는 서울시의 야경이 다른 도시들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낮의 서울은 각박하고 답답하다. 당장 눈앞의 일에 치여 먼 곳을 바라볼 여유가 쉽게 나지 않는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탁 트인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조금은 덜어보는 건 어떨까.

윤진호 수습기자 jhyoon200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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