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역사 도시의 민낯

“형편없이 반복적으로 뻗은 도로들과 소련식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심각한 환경오염 속에는 어떤 마음도, 영혼도 없다.” 대표적인 여행 잡지사 ‘론리 플래닛’ 기자 네이트 하이의 서울에 대한 평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지만 무려 10년 넘게 서울에서 생활한 그의 평에 반박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서울과 발음이 비슷한 소울(Soul)을 따와 만든 ‘Soul of Asia’라는 도시 브랜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서울은 어쩌다가 영혼도, 철학도 없는 그저 그런 도시가 됐을까. 한강변을 따라 높이 올라간 아파트들이 대표하는 2015년 서울의 모습을 진단해본다.

 


고층 경쟁 심하지만 랜드마크는 없어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뭘까. 63빌딩, 남산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최근 영화 <어벤져스 2> 촬영지로 화제가 된 세빛섬까지… 후보는 제법 많지만 어느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현재 공사 중인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555m라는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며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지만 최근 현대자동차가 삼성역 부근에 571m의 사옥을 지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그마저도 확실치 않아졌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서울의 랜드마크는 ‘부재중’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2년 여의도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세 개 동이 들어서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동안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다름 아닌 강남구에 위치한 타워팰리스였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관광호텔도 업무 빌딩도 아닌 아파트였던 것이다. 가히 ‘아파트의, 아파트에 의한, 아파트를 위한 도시’라 불릴만하다. 그러다보니 여느 대도시처럼 가장 높은 건물을 랜드마크로 삼기가 쉽지 않았다. 한때 서울의 상징이었던 63빌딩은 이미 고층빌딩의 반열에서 내려간지 오래고, IFC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아 어느 하나 랜드마크에 적합하지 않았다.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없다보니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스카이라인’ 역시 이렇다 할 특색이 없다. 스카이라인이란 건축물을 비롯해 산 등의 자연지형과 하늘이 닿는 경계선을 칭하는 말로 도심 지역의 고층빌딩 지역을 계획할 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스카이라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 역시 ‘미래의 랜드마크’를 자처하는 제2롯데월드의 완공을 앞두고 있어서다. 뉴욕의 경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주변, 홍콩의 경우 빅토리아 피크 주변의 도시 경관이 유명한 것처럼 서울 역시 제2롯데월드 일대가 서울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경관 정비 위한 ‘V자’ 스카이라인 설계

1981년 「도시계획법」이 제정된 이후 도시 계획에 있어 미적인 측면도 함께 재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경관법」이 마련되기까지 무려 26년이 걸렸다. 이렇다 할 도시 철학이나 계획 없이 급성장한 탓일까. 각 지역마다 개성이 강한 이 넓디 넓은 서울에서 어느 한 곳을 골라 서울의 중심이라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랜드마크 역시 없어 서울을 ‘대표하는’ 스카이라인을 논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지난해 7월 박 시장은 재선 이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파트촌으로 100년 후 서울을 그릴 수 있겠나”라며 장기적인 도시 계획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앞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스카이라인 정비를 포함한 도시 계획을 시행한 바 있지만 한강변에 초고층의 이른바 ‘병풍 아파트’를 들어서게 함에 따라 주변지역의 조망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에 박 시장은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도시 경관 변화를 위해 ‘전반적인’ 스카이라인 정비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거의 ‘날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고도가 들쑥날쑥하다. 일례로 종로구 일대는 청와대 주변의 고도제한으로 광화문까지 비교적 탁 트인 스카이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길 하나를 두고 고층빌딩이 빼곡이 들어선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공간이다.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대개 도심과 부도심의 고층 빌딩 지역이 높고 주변지역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산 모양을 띠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도시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에 한강이 흐르고 있어 다른 도시들처럼 중심 지역이 높은 도시 계획을 할 경우 한강변으로 높은 건물이 대거 들어서게 되고 이는 심각한 대기오염과 조망권 침해를 야기하게 된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2030 도시기본계획’을 통해 건물 간의 연속성뿐만 아니라 한강변 및 서울에 자리한 여러 산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한강변의 건물은 비교적 낮게 지어지고 서울 외곽으로 갈수록 높아져 산의 등고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V자 모양의 스카이라인이 그려진다.


장기적인 도시 계획으로 서울의 정체성 찾아야

스카이라인이 잘 정비돼있다고 평가받는 뉴욕이나 홍콩은 연속적으로 잘 이어지면서도 고도의 변화가 뚜렷한 모습을 띠고 있어 스카이라인만 보더라도 도시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박 시장은 이를 위해 한강을 중심으로 한 V자 스카이라인을 골자로 하되 각 권역의 특성을 고려해 차별적인 고도 제한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여의도나 삼성, 잠실 등 한강과 비교적 가깝지만 이미 업무지구로 성장한 지역의 경우 고층빌딩 건설이 불가피하고 V자 스카이라인을 고집할 경우 한강변 스카이라인이 단조로워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계속해 늘어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은 론리 플래닛이 선정한 ‘당신이 증오하는 도시 3위’에 꼽힌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찾지만 정작 서울에서 서울다운 무언가를 찾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홍보문구와 다르게 서울에는 그 어떤 매력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다. 그저 온갖 것이 뒤섞인 몰개성적인 도시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서울의 도시 경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한빛 기자 hanbitir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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