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역사 도시의 민낯

▲ 정면에서 바라본 국립민속박물관의 모습
세빛섬에서 지구 멸망을 획책하는 로봇, 지하철 2호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영웅들… 최근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2>의 주요 무대는 다름 아닌 서울이다.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에 서울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어벤져스를 통해 서울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졌다.

“서울사람도 서울인지 헷갈릴 정도니 외국사람들은 전혀 모를 것 같아요” 영화를 관람한 강다울(21) 씨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비단 강 씨만이 아니다. 영화 개봉 후 대다수의 관람객들은 볼멘 목소리를 냈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서울의 모습은 우리가 알던 서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 서울다울 수 있을까?


600년의 역사와 현재가 뒤섞인 낯선 광경

서울은 세계적으로 볼 때 그 규모와 역사가 남다른 도시다. 약 600년 동안 수도 역할을 해온 도시이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현대에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의 많은 건축물과 정책들은 이 역사성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지 못했다. 몇몇 건물은 마치 역사적 건축물이 현대 건축물에 얹어져 있는 엉성한 모양을 띄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경복궁 옆에 위치해 있는데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보다도 높아, 경복궁의 미관을 해치는 수준이다. 건축양식조차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짜깁기한 정체불명의 양식을 보인다. 실제로 1966년 문화재관리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와 관련해 "여러 동이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고 규정을 정한 바 있다. 역사적 건축물과의 조화를 그저 옛것을 ‘섞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한 1차원적 발상인 것이다.


아직 갈 길 먼 공공디자인

서울이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것은 역사성뿐만이 아니다. 세계 대도시들은 심지어 지하철역 표지판 하나에도 그 도시에 적합한 디자인 계획을 세운다. 그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결국 도시 전체의 느낌과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의 도시디자인은 개발논리에 밀려 소홀히 여겨졌다. 2005년에야 서울 도시디자인 기본계획이 착수됐고, 실질적으로 디자인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9년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이하 디자인 서울)’을 통해서다.

디자인 서울은 작게는 보도블럭의 폭을 규정하고 지하철역의 모양을 통합하는 것부터 크게는 세빛섬과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것까지 사실상 전무했던 공공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러나 몇몇 계획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획일화로 아우성을 샀다. 단적인 예가 바로 택시 색깔을 통일하려는 정책이었다. 뉴욕의 노란색 택시, 영국의 검은색 택시는 도시 자체에 작지만 통합된 이미지를 부여해 준다. 디자인 서울은 이러한 택시들처럼 서울을 상징하는 택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모든 택시의 색을 ‘꽃담황토색’으로 통일하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택시 색을 통일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난색을 표했음에도 주먹구구식으로 통일은 진행됐다.

영국의 택시들은 무척 비싸나 기사 자격이 무척 까다로워 유능하고, 중앙선 위에서도 유턴이 가능한 특권 역시 주어진다. 이런 이미지가 바로 ‘블랙캡’이란 검은색의 택시로 귀결된다. 이와 달리 꽃담황토색 택시는 맥락이 전혀 없어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고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작년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의 25%의 택시만이 꽃담황토색을 선택했을 뿐이다.


 
서울시민이 함께 고민해야 할 서울다움

서울의 긴 역사에 비해 디자인 정책은 그 역사가 너무나 짧다. 그래서일까. 서울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도시 이미지를 구축해야할지에 대한 담론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는 이러한 담론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지은 이 건물은 건축 초기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으며 그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DDP 부지는 당초 동대문 운동장과 동대문 야구장이 있던 자리이다. 유서 깊은 건축물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일부 시민들은 DDP 건축을 반대했다. 논란은 DDP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가속화됐다. 동대문 운동장을 허무는 과정에서 한성 성곽부지가, 야구장에서 조선시대 최대 군사훈련시설인 하도감 터가 발견된 것이다.

혹자는 DDP를 “기억의 장소에서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축의 폭력”이라며 비판한다. 두 역사적 건물들을 무시하고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기억의 장소에는 무슨 건물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DDP, 동대문 운동장 그리고 조선시대 유물. 이 세 가지 건물 중 과연 서울의 맥락과 닿아있는 건물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엇이 서울에 필요한 건물인지, 나아가 무엇이 서울다움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대학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들 역시 ‘서울다움’을 논하는 주체가 돼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문가와 일반시민 각각이 이해하는 서울다움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생각이다. 시민들이 서울디자인을 현안으로 인식하고 이끌어서, 서울다움을 살리는 주체가 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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