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우 설경구가 철로에 서서 절규하는 이 장면은 한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극 중 설경구가 연기하는 ‘김영호’는 타락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순수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인물이다. 영화는 개봉된 해였던 1999년을 배경으로 시작해 1980년 5월의 어느 날로 역행한다. 우리가 현대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5월 18일 광주에서의 기억이다. 영호는 완전무장한 채로 숨을 죽이고 있다.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영호가 자신의 순수함과 영영 이별하는 순간이.

지난 18일은 5.18 민주화운동의 35번째 기념일이었다. 당시 희생된 학생들과 시민들을 추모하는 여러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서울 국립현충원에서는 5.18 계엄군 전사자 추모행사가 열렸다. 계엄군 역시 국가의 강요에 희생당한 또 다른 피해자라 생각해왔던 탓에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내눈엔 그들 역시 국가의 명령에 원치 않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람들이었다. 영화 <박하사탕> 속 영호 같은 누군가가 분명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의 이름이 비범치 않다.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이라고 했다. 검색해보니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의 개입에 의한 폭동’이라 주장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간간히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이름도 보인다. 그들의 논리에서 계엄군을 희생시킨 건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아닌 그들이 ‘빨갱이’라 부르는 폭도였다. 영호가 총성을 들었을 때의 아득함과 막막함, 아찔함이 이랬을까. 내가 믿었던 상식과 사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 순수가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추모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레 느껴지는 안타까운 감정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데에 논리가 개입되는 순간 그 죽음은 온전히 추모받지 못한다. 특히나 그 개입된 논리가 사실과 다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의 시대에 계엄군을 추모하는 행위는 특정 집단에 의해 ‘논리적’으로 ‘장려’되고 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역사적 왜곡은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추모하려는 누군가는 결국 잘못된 논리를 반박하고 내가 그 사람들과 다름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감히 추모되지 못하는 누군가의 넋에 대해 진심을 담아 안타까움을 전한다.


장한빛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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