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뜻밖의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은 그간 내가 쌓아온 지식과 신념들을 통째로 파괴해버린다. 이럴 경우,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와, 한방 먹었네요. 멋진 이야기예요. 좀 더 이야기해주실래요?”라며 쿨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를 단순한 거짓말쟁이로 여기고 말 것인가?

영화 <맨 프럼 어스>는 ‘존’이라는 이름의 젊은 대학교수가 갑작스레 이사를 떠나게 된 날, 동료 교수들이 그를 찾아오며 시작된다. 학과장이라는 안정적인 지위마저 거절하고 떠나려는 존을 보며 교수들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지명수배라도 당했나? 신고 안할게. 어서 털어놔봐”라는 익살스런 동료의 추궁에 존은 뜻밖의 말을 꺼낸다. 자신은 늙지 않으며, 1만 4000여 년동안 살아왔고, 이를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옮겨 다니는 중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교수들도 “신세대 농담인가?”라며 웃어넘긴다. 일부는 존을 미친 사람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존은 진지하다. 존은 자신이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콜럼버스를 두고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지만 혹여나 바다 끝에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부처 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 성경, 정확히 말해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들은 ‘과장된 사람들’이라고 폄하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화들을 이야기한다.

▲ 존의 동료들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분명 그의 동료들은 전문가다. 이들은 생물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존의 이야기를 반박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가 증거로 내세우는 이야기들은 전문가의 설명과 어우러져 힘을 얻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늙는다’는 진리와 같은 명제마저 끊임없이 공격받게 된다. 영화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지식의 완전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과정 속에서 존의 이야기는 각 분야의 전문가인 동료 교수들에게도, 또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납득할만한 것’이 된다.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의 ‘신념’이 박살난다. 존의 이야기는 그만큼의 힘이 있다. 결국 그 누군가는 절규한다. 총구를 들이밀기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제발 장난이라고 해.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주의를 요함’이라는 소견서로 강제 입원 시킬테니 말이야”
결국 존은 이들의 공격적인 태도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고, 단지 이를 듣는 동료들의 반응이 재밌어서 일을 키운 것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한 것이 단순 장난이었는지, 진실이었는지 영화의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냥, 너무나도 그럴싸한 이야기가 진실로 여겨질 기회를 잃고 단순한 우스갯거리로만 여겨지게 됐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존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나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미친 사람 취급을 하고, 웃어넘기기도 한다. 개중에는 존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영화가 끝이 나고 나 또한 존의 이야기를 평가해본다. 그러던 중 문득 영화 속 한 대사가 떠오른다. “한때 마법이었던 게 지금은 과학이 되고, 콜럼버스도 미치광이 취급받았지”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13층> (조셉 러스넥, 1999)
- <트루먼 쇼> (피터 위어, 1998)

김준태 기자 ehsjfems@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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