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언젠가부터 굳어진 형식이 하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아빠를 부탁해>를 비롯해 SBS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이하 동상이몽), jtbc의 <엄마가 보고있다>와 같은 것들이 부모자녀 예능 프로그램의 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되짚어봤다.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부모자녀간의 소통과 이해

조준형 기자(이하 조): <아빠를 부탁해>는 등장하는 부모자녀 간의 관계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50대 아빠와 여대생이라는 관계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와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실제로 등장하는 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들이 아빠를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김태현 기자(이하 김): 맞다. 배우 조재현의 딸이 아빠의 관심을 얻기 위해 그 주위를 계속 맴도는 모습이 기억난다. 사춘기 자녀의 고민을 다루는 <동상이몽> 역시 부모와 자식이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한 예능이다. 나는 <동상이몽>을 보면서 KBS2의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가 떠올랐다.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부모와 자녀가 마지막에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 패널들로부터 투표를 받는 것까지 굉장히 닮아있다. <엄마가 보고있다>는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의뢰로 자식의 하루를 관찰하는 예능이다. 이렇게 보니까 이 프로그램들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아빠를 부탁해>와 <동상이몽>의 부모와 자녀는 한 지붕 밑에서 산다. 하지만 <엄마가 보고있다>의 자녀들은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세 프로그램 모두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포장지를 사용했지만 사실 속의 알맹이는 같은 셈이다.


어른들도 성장하는 부모자녀 예능 프로그램

조: 사실 이전에도 KBS2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하 슈돌), MBC의 <아빠! 어디가?> (이하 아어가)와 같은 부모자녀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은 위의 세 프로그램들과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슈돌>과 <아어가>에서 가장 주목 받는 요소는 자녀들이다. 윤후 앓이, 추사랑 앓이, 삼둥이 앓이들로 대변되는 현상이 이를 반영한다. 아기들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위의 세 프로그램들의 초점은 아이에만 고정돼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들의 초점은 자녀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향해있다.

김: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빠를 부탁해> 같은 경우 아빠가 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등 부모자녀들이 여러 콘텐츠를 공유함으로써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거친다. <동상이몽>과 <엄마가 보고있다>의 경우 매번 등장하는 부모자녀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매화마다 전혀 다른 콘텐츠들로 방송이 구성된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은 부모가 자녀의 시각으로, 자녀가 부모의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슈돌>과 <아어가>의 경우 결국 기승전 ‘재롱’이다. 예를 들어 <슈돌>은 특정한 콘텐츠 없이 ‘삼둥이’가 송일국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사랑이’가 바나나를 먹는 장면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어가> 역시 시청자들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모습은 윤후의 먹방 장면이다.

조: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의 부모자녀 예능 프로그램들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슈돌>과 <아어가>를 보는 시청자들은 아이들의 재롱 외에는 볼만한 요소가 크게 없다. <슈돌>과 <아어가>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장을 돕는 소극적 역할에 머물러있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성장하는 주체는 주로 ‘자녀들’이다. 하지만 위의 세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성장하는 진정한 ‘부모자녀’ 프로그램인 것 같다. 문제점을 상대방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통해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해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위 프로그램들은 사춘기 소녀에서부터 엄마와 아빠들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억지스러운 힐링은 유의해야

김: 하지만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사실 TV 속의 그들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아빠를 부탁해>의 대학생과 아빠가 소통하는 과정은 우리들을 부모님들과 소통하는 장으로 데려다주지는 못한다. 억지로 관계가 회복되는 설정들이 들어가는 순간 나는 위 예능들이 불편해진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되 억지스러운 설정은 피해야 시청자들도 ‘아빠’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고 싶어지지 않을까.


정리_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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