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간 김 씨. A 서가부터 Z 서가까지 여행 서가를 찾는 것만도 한참이다. 책의 바다를 뚫고 어렵사리 찾은 여행서가. 많은 책을 뒤적여보지만 정작 원하는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는 책은 없다. 대부분의 책들이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짜깁기 한 것만 같다. 내 취향에 딱 맞으면서 동시에 원하는 내용만을 충실히 담고 있는 책을 찾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최근 등장하고 있는 ‘전문 도서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 전경

작지만 깊이 있는 전문 도서관

전문 도서관은 ‘작지만 깊이 있는’ 도서관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취급하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전문 도서관은 특정 분야의 책만을 취급한다. 한 분야에 특화돼 있기 때문에 일반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책들이 구비돼있다. 특정 분야에 취미를 가진 일반인뿐만 아니라 그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런 전문 도서관의 대표적인 예는 시카고의 ‘뉴베리 도서관(newberry library)’이다. 뉴베리 도서관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인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이 주를 이룬다. 뉴베리 도서관은 학술가치가 높고 전문적인 내용이 담긴 필사본만 500만 장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도서관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문 도서관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도서관은 ‘정보의 보고’라는 고전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매체의 발달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증가돼 도서관은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위한 장소만은 아니다. 이런 흐름을 잘 반영하는 현대의 도서관 중 하나가 전문 도서관이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전문 도서관의 테마 중 하나가 교류다. 특정 정보를 얻으러 혼자 가는 곳이 아니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소통의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곳이 바로 전문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 교수는 “우리나라 전문 도서관들의 대부분은 민간 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는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문 도서관은 제공자와 수요자의 욕구가 잘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된 좋은 예”라고 말했다.

▲ 강남 현대자동차 오토라이브러리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명동 CGV에 위치한 ‘씨네라이브러리’는 영화광이라면 한번쯤 꿈꿨을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영화 전문 도서관이다. 이곳은 실제 영화 상영관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 일반 도서관에 없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포함해 영화 관련 책 약 15000권을 소장하고 있다. 스크린을 그대로 뒀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다 고개를 들면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영화 전문 도서관에서 만난 이성경(24) 씨는 “평소 영화를 즐겨본다. 원작 작품을 찾아 읽는 편인데 인기 있는 원작이 아니면 찾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곳은 그런 원작들을 잘 구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와 감독을 포함 영화 관련 인사 100인에게 추천을 받은 책을 전시하는 것도 영화광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 중 하나다.

강남에 있는 현대카드 ‘트래블라이브러리’ 역시 주말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전문 도서관 중 하나다. 천장에는 비행기 모빌이 떠있고 벽면에는 비행 안내판이 붙어 있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 곳곳에 묻어있는 이 도서관은 여행 관련 도서 약 15000권을 비롯해 주요 여행 국가의 지도와 전철 노선도를 소장하고 있다. 큰 스크린과 구글 위성 시스템을 통해 각국의 매력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취향에 맞는 여행지에 관한 항공편과 숙소를 직접 예약하고 여행 일정을 상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여행을 앞두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이곳에서 여행일정을 예약한 김일중(37) 씨는 “블로그나 대중 도서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담겨 있는 도서가 많다. 직접 예약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 번역 전문 도서관의 한영 소설책들
취향을 넘어 더 전문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서초에 있는 ‘나라셈 도서관’은 통계청 및 각 기관의 간행물과 통계자료를 갖춘 통계 전문 도서관이다. 이곳은 4만 권 이상의 국내외 통계 도서를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미나실과 통계 전문가와의 상담실도 마련돼 있다. '마이크로데이터서비스시스템(MDSS)'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MDSS를 이용하면 거시적인 범위의 통계를 미시적인 범위로 파악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통계를 동 단위로 좁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통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통계 전문가들이다. 나라셈 도서관의 송인하 사서는 “보다 전문적인 자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라셈 도서관을 찾아온다. 오늘 오전에도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원생들이 세미나실을 대여해 통계학술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설립한 ‘번역 전문 도서관’ 역시 번역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도서관이다. 한국문학도서들이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있기 때문에 번역가 지망생들이 즐겨 찾는다. 한국문학작품을 자신의 언어로 접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번역가를 꿈꾸고 있는 김세리(22) 씨는 “번역 공부를 하며 한국문학이 그리고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 있는 번역 도서를 보며 어떤 식으로 번역이 됐는지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정호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의 취향이 다각화되고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전문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런 사회적 흐름과도 연관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더욱 더 많은 전문 도서관이 생겨날 것”이라며 전문 도서관의 전망에 대해 말했다. 찾는 책이 있다면 무작정 도심 한복판의 대형 서점으로 향하기 보다는 작지만 깊이 있는 전문 도서관을 먼저 찾아가보는 건 어떨지.

 

글·사진_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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