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 흔히 있을 법한 이런 대화를 한번 상상해보자.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뭘 잘못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막히는 대화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우리의 상상 속에서 전자의 말을 하고 있는 쪽은 남성, 후자의 말을 하고 있는 쪽은 여성일 것이다. 우리는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대화방식을 가지는 두 화자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사회언어학’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다른 고민, 다른 방법

언어가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언어의 사회성’이란 개념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친숙한 개념이다. 언어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언어의 이러한 특성이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언어학이란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불과 6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언어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모든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가 있다. 바로 노암 촘스키다. 그는 문법 자체가 인간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가령 이제 막 말을 배우는 단계의 아이들은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하며 말을 배운다. 어느 정도 단어와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면, 이내 이를 연결하여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정확한 문법으로 말해낸다. 단순히 모방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극적인 변화다. 촘스키는 이를 인간의 본능에 내재돼 있는 언어능력의 결과라고 본다. 인간에게는 내재돼 있는 몇 가지 언어능력이 존재하고 이를 이용해 무수히 많은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다.

이 언어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촘스키는 친밀도와 같은 개인적 부분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적인’ 화자를 가정한다. 이를 통해 모든 언어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규칙을 밝혀낸다.

하지만 현실의 화자들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항상 사회적 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 성별에 따라, 국가에 따라 우리의 언어생활은 달라진다. 촘스키로 대표되는 생성언어학은 ‘A면 B다’는 정적인 방식을 취한다. 반면 사회언어학은 ‘A가 B가 되지 않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한다. 즉 ‘A가 B가 되거나 C가 되는’ 동적인 과정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언어학은 언어와 사회를 똑 떼어 분리하는 기존의 접근방식에 반기를 들며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언어학의 연구방식을 처음 정립한 사람이 사회언어학자 윌리엄 라보프다. 윌리엄 라보프는 뉴욕 사람들 중 모음 뒤의 [r]발음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윌리엄 라보프는 이러한 차이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지역의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발음을 조사했다. 실험결과 상류층 지역에서는 30% 사람이 [r]발음을 정확히 한데 비해, 하류층 지역에서는 단 4%만이 정확히 발음했다. 즉 사회적 계층이 언어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대화방식의 모습
사회가 만들어 낸 남자어, 여자어

흔히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대화방식을 일컬어 누리꾼들은 ‘남자어’와 ‘여자어’라는 신조어를 사용해 구분한다. 사회언어학의 주요 연구 분야 중 하나는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남녀 간의 언어 차이를 가려내고 분석해내는 일이다.

‘마약옥수수’,‘ 마약스테이크’ 이처럼 우리는 종종 맛있는 음식에 ‘마약’, ‘중독’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계량언어학자인 댄 주래프스키는 이 표현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마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음식을 먹은 책임을 자신에게서 분리시킬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살이 찔 것만 같은 음식이 우리의 입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갈 때 느끼는 죄책감. 이 죄책감을 내 책임이 아니라 중독적인 음식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음식, 마약이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해!”

주래프스키는 레스토랑 리뷰에 쓰이는 표현을 조사하며 남성들보다 여성이 리뷰에 ‛‘마약’과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에 대해 댄은 “건강식품이나 저칼로리 식사에 적응하라는 압박이 여자들에게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즉 여성에 대한 사회의 가치관과 기대가 여성의 언어 사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성이 ‘마약’과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여성의 기질이나 성품에 의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의 언어사용 양상이 다른 것은 단순히 성별이라는 태생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의 대화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성차에 의한 특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가령 남자라서 정보전달 위주의 말하기를 하고, 여성이라서 감정전달 위주의 말하기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남성과 여성의 대화방식이 차이가 나는 까닭은 남녀에 대해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불편한 당신

“이봐요, 당신” 초면의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언제 봤다고 초면에 당신이래?’라는 생각에 불쾌감이 들 것 같다. ‘당신’은 2인칭 대명사이지만 정작 타인을 부를 때 쓰이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오히려 상대를 얕잡아 부르는 뜻을 지닌 탓에 타인에게 사용했다가는 이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씨’ 역시 비슷한 모습을 띈다.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씨’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씨’는 대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쓰인다. 이렇듯 우리나라 말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동등한 관계의 낯선 이를 부르는 호칭을 찾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낯선 이를 부를 때 가족관계에 쓰이는 말을 쓰게 된다. 가령 연세가 많으신 어른을 부를 때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이병혁 명예교수는 “급속히 도시화된 우리나라의 특성상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친족어가 도시화된 사회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을공동체 친족어란 농촌공동체에서 서로를 허물없이 부르는 언어를 말한다. 고기집 아주머니를 흔히 ‘이모’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본 음식점 종업원이 이모가 되는 광경은 외국인이 보기에 무척 낯설고 기묘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 곧잘 ‘언니’, ‘어머님’, ‘아버님’과 같은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호칭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호칭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신’처럼 불편하고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호칭들 외에 낯선 이를 부를 말은 여전히 마땅찮다. 마을공동체 친족어는 낯선 이를 부르는 호칭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님, 이거 얼마에요?” 의존명사로서 다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인 ‘님’은 이제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상대를 부를 때 쓰인다. 온라인의 ‘익명성’이란 특징이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가진 역사, 특징 등에 의해 일상적인 언어의 쓰임새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 과정을 찾아내고, 흐름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사회언어학이다. 훗날 어느 사회언어학자가 ‘님’의 의미변화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연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
이병혁, 『한국사회와 언어사회학』, 나남, 1993.
댄 주래프스키, 김병화 역, 『음식의 언어』, 어크로스, 2015.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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