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이다. 내 돈을 주고 마스크를 구입했다. 중동발 메르스 탓이다. 치사율이 40%에 이른다고 알려졌던 이 병은 나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다. 단순 감기에 걸렸을 뿐이지만, ‘혹시 내가 메르스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불안에 떠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메르스와 관련된 뉴스는 연일 1면을 장식하고 있고 국민들은 메르스 환자가 방문한 병원을 피해 다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탓에 ‘코 속에 바세린을 바르면 낫는다’는 출처 불명의 루머도 돌아다니고 있다니.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닌 듯하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대처방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메르스는 아직까지 별다른 치료약이 없는 탓에 환자들을 일반 시민에게서 격리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이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낯설지만은 않은 광경이다. 요즘 들어 재난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때마다 정부의 미숙한 대처는 빠짐없이 따라왔다.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국가가 재난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날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정부가 불쌍했던 모양인지,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보인다. 재밌는 점은 정부를 두둔하고 있는 사람들마저 국가의 국민보호 기능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왜 대통령을 욕하냐’며 정부를 옹호하고 있다. 재난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은 다 개인의 탓이지, 국가가 딱히 잘못한 것이 없다는 논리 되시겠다. ‘국가는 그럴 여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니 욕하지 말라’는, 희희낙락하며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논리들이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장은 현 정부를 비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4조 6항에 명시된,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할 의무다.

칸트는 ‘해야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분명 헌법에 명시된 사항은 국민들 혹은 정부가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고, 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어쩌다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일도 수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또 어쩌다 그들을 옹호하는 여론은 ‘국민 보호의 기능’을 포기해버리는 지경까지 왔을까?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이건 비판하는 사람이건, 국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은 사라져 버린 것이 훤히 보이는 요즘이다.

김준태 부국장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