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을 무분별하게 조롱하고 비하하는 ‘여성혐오(이하 여혐)’가 주목받고 있다. <쇼미더머니>의 송민호는 여혐 가사를 뽐내며 경연에서 승리했고, <웃찾사>의 한 코너에서는 ‘개념 없는 여자친구’를 마음껏 조롱하며 웃음을 유발했다. 여혐이 예능 프로그램(이하 예능)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범람하는 여혐 예능

⦁ 박소정 기자(이하 ‘정’):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송민호는 “MINO(민호)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경합에 나섰다. 여성들이 산부인과에서 일명 ‘치욕 의자’에 앉아 진찰을 받는 행위를 성적인 행위로 치환한 것이다. 무분별하게 여성에 대한 조롱 및 비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여혐’ 가사다. 하지만 이런 가사를 제지없이 내보낸 프로그램 측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성에 대한 비하가 스스럼없이 전파를 타고 나온 것은 이런 여혐 정서가 일상 속에 녹아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 박소은 기자(이하 ‘은’): 여혐 정서가 일상에 만연해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요즘엔 대부분의 예능에서 여성에 대한 지적이나 희화화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얼마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래퍼 치타와 미식축구 국가대표 스트렝스 코치 예정화가 출연한 편을 보게 됐다. 사실 이 편은 치타와 예정화에게 쏟아지는 남성 패널들의 지적이 불편해 보기 힘들었다. 남성 패널들은 방송 내내 짧은 머리와 짙은 화장을 고수하는 치타에게 “여자는 일단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지적을 일삼는다. 머리가 길어도 개그코드로 쓰일 뿐 지적을 받지는 않는 강균성과 온도차가 상당하다. 외모 조롱도 여성에 대한 지적이나 희화화를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도 여혐과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놀이’로 정당화되는 여혐 예능

⦁ 정: 개그프로그램 웃찾사의 <남자끼리>에서는 남자친구를 의심하거나 사소한 일에 토라지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쓰지 않고 계속 사달라고 조르기만 하는 여자친구가 등장한다. 일상 속에서 ‘개념 없는 여자친구’로 통용되는 모습들이다. 반면 이런 여자친구를 다루는 데 쩔쩔매는 남자친구를 사장이 구제하고 “요즘 세상의 약자는 남자죠. 남자끼리 돕고 사는거지요”라는 멘트를 날린다. 일종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조롱은 여자를 향하고 있으면서 공감은 남자로부터 얻어내는 이런 방식은 굉장히 이분법적이면서도 폭력적이다.

⦁ 은: 그렇다. 최근 예능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자vs여자’라는 구도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특히 <남자끼리>는 철저히 남자의 시각에서 여자의 개념없는 모습들을 끄집어내고 공격을 가한다. 반면 과거 개그콘서트에는 <키컸으면>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어쨌거나 160”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며 키 작은 남자에 대해 희화화하는 코너였다. 이 코너는 ‘키작남’과 같은 단어를 유행시키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키 작은 남성을 조롱한다는 지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키 작은 남자를 희화화하는 주체가 키 작은 남자 자신이고 또 이런 희화화로 공감을 얻는 사람들 역시 키 작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개념녀’ 되기 위한 투명 코르셋

⦁ 정: <키컸으면>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웃음을 유발한다. 지적, 희화화 모두 자신에 국한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혐이 예능에 구현될 때는 내가 아닌 타자에 대한 공격을 예능이라는 놀이로 합리화한다. ‘웃기려고 하는거다’, ‘저 사람도 저렇게 웃기잖아’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보다 무서운 것은 이 조롱의 놀이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개념없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보면 ‘개념있는 여자친구’와 같은 게시글이 좋아요 폭탄을 받고, 나도 이렇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개념녀’가 되기 위한 일종의 투명 코르셋을 바짝 조이며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 은: 투명 코르셋 얘기를 들으니 최근 키썸이 피처링해 화제가 된 <성에 안차>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렇게 많은 백을 갖고도, 옷장에 꽉 찬 옷을 보고도, 그렇게 멋진 남자를 만나도 성에 안차니?’라고 일침을 가하는 양 가사를 내놨다. 명품을 밝히고 돈 때문에 남자를 만나는 ‘된장녀’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제이스와 키썸은 된장녀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SNS에 명품을 선물받은 사실을 자랑했다. 정말 개념녀가 아니라 개념녀로 보여야한다는 코르셋을 쓰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코르셋은 자신의 숨통을 조일 뿐이며, 자칫 진짜 ‘개념녀’를 매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이면 조일수록 겉모습은 아름다워지는 것 같지만 속은 문드러지는 것처럼, 남들의 기준에 맞춰 ‘개념녀’가 되려고 할수록 정말 개념녀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정리_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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