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입니다. 많은 대학에서 융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고, 기업에서 역시 융복합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대학 역시 융복합교육을 통해 학교를 더 발전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곳에서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고 있는 융복합. 하지만 융복합은 과거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완벽해 보이기만 했던 학문 간 융복합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학자들의 자존심 싸움, 과학전쟁

1996년 어느 날, 뉴욕대학교의 수리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은 한 가지 장난을 시도 합니다. 인문사회학 계열의 학술지인 『소셜 텍스트』에 자신의 논문을 기고합니다. 「경계를 벗어나서: 양자 중력의 변환 해석학을 향하여」라는 긴 이름의 이 논문은 사실 엉터리 천지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쓴 글들을 짜깁기해 엉터리로 만든 논문이었던 것이죠. 그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은 자신의 인문사회학적인 지식에 과학을 융합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풍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소칼은 『소셜 텍스트』에 우선 자크 라캉, 질 들뢰즈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고 발췌하며 그들의 놀라운 통찰력을 칭찬하는 척 했습니다.

그 후 소칼은 『링구아 프랑카』라는 학술지에서 자신이 『소셜 텍스트』에 실은 논문은 모두 엉터리였다고 폭로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이 과학 전문용어를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소칼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결론만을 짜깁기 해 논문을 발표했다고 밝힙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이 사용한 과학 용어들이 주로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에 근거해 이들을 비판한 것이죠. 더 큰 문제는 소칼의 엉터리 논문이 인문사회학 학술지에 실릴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앨런 소칼
과학전쟁이 가져온 결과

후폭풍은 무척이나 거셌습니다. 통쾌했다는 반응과 비열했다는 반응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빠른 온라인 속도덕분에 싸움은 점차 과열됐습니다. 물론 다른 전쟁처럼 피해자가 나온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들의 논쟁과 자존심 싸움은 여느 전쟁 못지 않았습니다.

과학전쟁 초기에 학자들은 상대방 연구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주로 했습니다. 하지만 논쟁이 진행될수록 이 전쟁의 원인은 각 분야마다 다르게 사용되는 개념 및 표현 방식을 학자들이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과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 사이에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는 방법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과학자들에게 있어 과학적 개념은 진리인데 반해,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에게 과학적 개념은 자신의 철학을 지지하는 하나의 근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적 차이는 학문간 융복합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논쟁 끝에 남은 미해결 과제

현재 과학전쟁은 잠잠해졌지만 융복합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첫째로 과학 지식에 대한 견해 차이입니다. 과학자들은 과학 지식이 순수하게 관찰 및 실험에 기반해 형성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논쟁은 해석적 유연성에 관한 것입니다. 해석적 유연성이란 과학 활동에서 과학 자료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서 설명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자들은 해석적 유연성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반대 진영에 있는 학자들은 해석적 유연성에 기반해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가려 합니다. 이렇듯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존재하는 만큼 과학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휴전상태인 만큼, 전쟁은 또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몇몇 논쟁에서 서로의 대립각을 좁히지 못한 채 지금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말하길 ‘과학전쟁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소모전’이라고 합니다. 융복합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지금, 우리는 제 2의 과학전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수환 선임기자 iialal91@uos.ac.kr
참고_ 이인식 편,  『통섭과 지적 사기』, 인물과 사상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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