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충’, ‘헬조선’ 등은 요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신조어들이다. 신조어들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신조어들, 어딘가 ‘불안불안’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금수저’를 갈망하는 모습으로, ‘죽창’을 들자는 말들로 표현해서가 아닐까.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요즘 신조어들의 이러한 모습에 주목하여 특집 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참을 수 없는 진지함의 부담스러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도 진지충, 사실 관계를 바로잡아도 진지충,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행동하면 모두가 진지충이 된다. ‘진지충’이란 너무 진지해서 부담스러운 존재를 뜻한다. 한 때는 모든 이가 갖춰야 할 것으로 여기던 진지함. 이제 우리는 진지함을 외면하고 있다.


현재의 조류와 맞지 않는 진지함

요즘 대중문화는 가볍다고들 말한다. 정윤조(23) 씨는 “요즘 대중문화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전하려는 메시지도 없고, 그저 약간의 웃음만 유발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벼움이 통용되는 문화에서 진지함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임동균 교수는 “지금 세대에서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은 문화적인 코드의 마찰을 야기한다. 그 마찰에서 불편함이 유발되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회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진지함을 기피하는 것은 쿨(cool)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뭐든지 가볍고 쿨하게 넘기려는 문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지함에 뒤통수를 맞다

요즘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진지하고 심각한 글이 올라온다.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해 힘들어하는 사연, 기이한 집안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연 등 평소에 접해볼 수 없는 사연들이다. 하지만 이런 사연들은 곧 자작글로 판명난다. 얼마전 국민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세모자 성폭행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분개하며 이들을 어떻게든 도와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엄마와 아들들이 동네 점쟁이와 함께 짜고 친 자작극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정진환(21) 씨는 “사기극이라고 밝혀진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진지하게 같이 고민하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왔는데 결국 남은 것은 허무함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진지한 글에 ‘다음 자작’, ‘다음 판춘문예’라며 읽어볼 생각도 안 한다. 결국 진짜 진지한 고민들은 묻히게 된다. 


진지하게 고민하면 답이 나오나요

기성세대는 말한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고민하면 좀 더 행복해질 거라고. 하지만 삶을 치열하고 충실하게 살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행복하지 못하다. 김진희(24) 씨는 “열심히 고민하고 또 살아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살면 살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오히려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인식을 비판하며 재빠른 태세전환을 하기도 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이내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고, 뭔가를 진지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진지함을 너무 강하게 얘기하면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진지하냐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진지함의 사회로 다시 나아갈까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오히려 가벼움에 대한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A(27) 씨는 “요즘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나는 진심을 다해서 얘기했는데 오글거린다고 얘기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가볍고 행복한 이야기만 적어야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친구들과의 채팅 역시 진지한 말이 들어갈 자리에 이모티콘이 대신하고 있다

임동균 교수는 “8,90년대는 고민의 시기였다. 지나치게 진지하게 사회에 대해 고민했다. 그 때문에 반대급부로 지금의 가벼운 사회가 나타난 것”이라며 “가벼움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는 상황이 지속되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수환 선임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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