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외모를 허물 벗듯 벗어내는 상상은 누구든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모처럼 쇼핑을 하러 간 옷가게에서 작아서 맞지 않는 바지를 한 손에 들고 점원에게 한 치수 더 큰 바지를 부탁할 때의 왠지 모를 머쓱함. 간만에 올라간 체중계의 눈금이 내 예상보다 더 높은 수치를 가리킬 때의 철렁함. 체형과 몸무게에 관계없이 모두들 한번쯤은 겪어봤을 감정들이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살찌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주입시켰을까.


성숙하지 않은 인식 속에 자란 비웃음

‘살찐’ 사람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호의적이지 않다. 평균 몸무게와 비교 했을 때 과체중 이상의 체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방송매체와 웹사이트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일이 있었고 이러한 일을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 김채린(21) 씨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으로 부모님과 함께 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뚱뚱한 사람들이 음식을 게걸스럽게 마구 먹어대고 이를 지켜보는 다른 출연자들과 관중이 이들을 비웃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는 나도 그저 웃으며 그 프로를 시청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뚱뚱한 사람들을 왜 그토록 왜곡되게 표현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거의 모든 방송매체가 뚱뚱한 사람들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나도 자연스레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갖고 타인을 평가했다”고 말했다.

 

정형화된 기준에 대한 반향, 플러스 사이즈

빼빼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현대사회의 미의 기준에 반기를 들며 나타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다. ‘빅 사이즈 모델’로도 불리는 이들은 평소 패션잡지에서 자주 보는 마른 체형의 모델이 아닌 풍만한 체형을 가진 모델들이다. 여러 주요 패션잡지에서 기존의 마른 모델들이 아닌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을 표지모델로 내세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9년부터 미국에서 매년 개최되는 ‘Full Figured Fashion Week’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을 위한 패션쇼이다. 사이즈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며 모든 여성들은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모토로 시작된 패션쇼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의 경우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미약한 편이다. 그러나 이를 개척하면서 보다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움의 기준을 전파하려는 움직임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잡지 『66100육육일공공』(이하 66100)은 ‘사이즈와 상관없는 아름다움, 사이즈 너머의 무한함’을 모토로 제작되고 있다. 잡지에는 여성 66사이즈와 남성 100사이즈를 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들은 옷을 사러 옷가게에 들렀을 때 옷을 고르기도 전에 점원이 맞는 옷이 없을 것이라며 홀대한 경험, 사진에 나온 뚱뚱한 자신의 모습이 싫어 사진을 잘 찍지 않는 경험을 얘기한다. 자신들의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떤 잡지 모델보다 당당하고 아름답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뚱뚱하면 어때? 나는 나 자체로 아름다워!”

『66100』의 편집장 김지양 씨는 “한국의 플러스 사이즈 시장은 ‘패션’이라는 큰 틀 내에 부속적인 항목으로 속해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 같은 해외의 플러스 사이즈 시장은 ‘패션’에 종속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한다”고 한국의 플러스 시장의 미약함에 대해 얘기했다. 이어 그는 “잡지 창간 초기에는 플러스 사이즈 패션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뤘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얘기하려 하고 있다”며 잡지의 장기적인 목표를 전했다.

▲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방송매체에서 드러나는 그들만의 당당함

플러스 사이즈인 사람들은 패션계와 잡지의 경계를 넘어서 더 넓은 분야에서 이전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들만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그들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뚱뚱한 사람들을 먹는 일에만 혈안되어 있는 사람들로 묘사한 매체가 많았다. 두 볼이 미어터질 만큼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넣고 끝임없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만을 보여주며 이를 마치 뚱뚱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성처럼 묘사한 프로그램들이 방송을 탔다.

‘먹는 방송(이하 먹방)’이 주류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우후죽순으로 이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그 중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프로는 뚱뚱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독보적인 특색을 가진 먹방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음식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그들은 층층이 쌓은 음식을 한입에 넣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먹방의 애청자 성은별(21) 씨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뚱뚱한 사람들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잘 살렸기 때문에 보기 편하면서도 쉽게 공감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가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해석

인터넷이나 거리 곳곳을 통해 한번쯤 보았을 법한 그림들이 있다. 바로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이다. 그는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뚱뚱하게 표현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나리자’마저 뚱뚱하다. 빵빵한 얼굴에 비해 작은 이목구비, 변기 크기의 두배가 넘는 여인의 엉덩이, 발가락만으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육중한 몸매를 가진 발레리나는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보테로의 작품에는 뚱뚱한 사람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상징이 많이 담겨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재된 상징성 보다 작품 속 인물들의 뚱뚱한 체형에 더 주목한다. “왜 뚱보를 그리는가?”라는 질문에 페르난도 보테로는 “나는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았다. 다만 볼륨을 그린다”고 말했다. 보테로가 당연히 뚱보를 그렸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대답에 놀란다. 사람들은 보테로의 그림을 보면서 인물들이 뚱뚱하다는 생각만 하고 아름답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보테로의 그림을 보면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날이 와야하지 않을까.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