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당선작

 
배달직 구함,
원동기 면허 필수,
급여는 추후 결정


배달, 허억, 직 구함. 구인문을 따라 읽던 근호는 침을 잔뜩 삼켰다. 얼마나 뛰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원, 동 원동기 면 헉. 당연히이 있지. 사람들은 근호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땀에 절어 있는 남자가 세탁소 앞에서 중얼거리는 모습은 꽤나 우스웠다. 반짝이가 난무한 넥타이는 덤. 게다가 오늘은 올 들어 가장 덥다는 날이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넥타이는 더욱 빛났다. 헉, 아 니미. 에엣취! 근호는 소매 끝을 끌어당겨 흘러나온 콧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이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곤 두리번거렸다. 더 이상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근호는 세탁소 안을 힐끔거렸다. 수많은 옷가지와 공업용 다리미의 안개 같은 스팀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편 허리를 주먹으로 치고 있는 근호의 머리 위로 밖에 걸어놓은 옷들이 스쳤다. 그래 이건 분명 부처님이 주신 기회야. 근호는 생각했다. 미친놈아 이제 이렇게 살지 말자. 심지어 다짐까지 했다. 깨끗하게 살자.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소리까지 질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길 건너에 선 근호를 일시에 바라보았다. 근호는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떵떵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 한 여자가 세탁소 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광대가 조금 튀어나온 빵빵한 얼굴과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드문드문 자리 잡힌 주름과 기미는 사십대 중후반의 느낌을 냈다. 어색하게 웃는 근호에도 여자는 무표정이었다. 그러다 근호의 뒷목을 잡게 하는 말을 내뱉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뭐 땀시 그런 다요? 제비거튼 아재가. 그에 근호는 제비인거 어떻게 알았습니까? 묻고 싶었지만 그 대신 짧은 숨을 내뱉었다. 배달직 구한다고 해서요. 저 면허증 있는데. 그리고 근호는 자신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돈을 쥐어주던 아줌마들에게 했던 것처럼 눈을 접어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는 무표정이었다. 근호는 점점 민망해졌다. 여자가 다시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고런 넥타이를 하고는. 어디 아프당가? 거 낙타도 더워 뒤질 날씨인디 시상에 웬 정장이냔 말이여. 싸게 싸게 들어오쇼. 멍하니 서 있던 근호는 속으로 만세를 했다. 콧물은 아직 삐질 나오고 있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근호는 일명 제비였다. 제비라 하면 모든 여자들에게 웃어주고 바라는 대로 해주며 등 쳐먹는 남자를 뜻하는데, 그래 그런 뜻에서 근호는 제비가 맞았다. 이십대 초반인 근호가 마음에 들어 카바레를 찾아오는 아줌마들만 해도 여럿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춘다는 브루스 춤을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들과 추다보면 뒷주머니에 자연스레 들어오는 것이 돈이었다. 그러다 2차로 밖에서 함께 무언가를 하면 지갑은 더욱 두둑해졌다. 근호 덕에 카바레까지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카바레 주인은 근호를 무진장 아꼈다. 자는 곳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의식주가 알아서 해결되니 근호는 참 살맛나는 인생을 산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바레 주인은 근호에게 여성유흥업소를 소개했다. 카바레에 한번 왔던 유흥업소의 여주인이 카바레 주인에게 큰돈을 준 것이었다.

근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치욕감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더 크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술을 마신 후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여자들에게 비위를 맞춰주고 목이 나가라 노래를 부르고 청소에 심부름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근호는 무턱대고 자신을 찾아와 멱살을 잡는 남자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근호를 쥐 잡듯 흔들며 내 마누라한테 얼마나 뜯은 거야, 하고 소리쳤다. 아저씨 마누라가 누군데요. 근호는 나름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주먹을 들어 보이는 남자와 남자의 뒤로 들어오는 덩치들에 무조건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뒤쫓아 오는 남자들에 근호는 이를 악 물었다. 어린 시절 사탕 하나 훔쳐서 문구점 아저씨에게 쫓기던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살려면 뛰자.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자. 그것으로 근호의 제비 인생은 끝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뛰고 숨고 소리 지르고 구르고 별 짓 다하다 남자들을 따돌린 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한참 떠돌다 또 남자들과 마주쳐 미친 듯이 뛰다 온 곳이 여기였다. 굿모닝 클리닝. 근호는 콧물과 땀을 소매로 한꺼번에 닦고는 세탁소 안으로 들어갔다. 근호가 따놓은 자격증이라고는 고작 원동기 자격증 하나였다. 또 중화요리나 치킨 집에서 배달을 하던 경력이 있으니 세탁소에서 구한다는 배달직에 근호가 얼추 어울렸다. 안은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게 더웠다. 발밑으로 박스팬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더위를 식혀주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해보였다. 근호는 정장마이를 벗으며 세탁소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부대껴야 지나갈 수 있을만한 공간 옆으로는 수많은 옷들이 각자의 이름표를 매단 채 걸려있었고 의자 위에는 뜯어진 천이 덧대어 있었다.

작업대 위의 줄자와 쪽칼, 피크는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가지런한 긴 줄을 가진 스팀다리미를 보던 근호가 작업대 옆 상자에 쌓인 치마, 와이셔츠 따위를 들춰보는데 갑자기 여자가 말을 시켰다. 근호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야기 좀 해보랑께. 살라고 하는 짓일턴디 모든 일엔 근거가 있다고 뭣땀시 이 일을 할랑 해는지는 들어야지 않겄소. 근호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 환히 웃었다. 하지만 여자는 근호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옆에 앉은 할머니와 이야기를 했다.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여자가 다시 근호를 바라보았다. 뭔가, 영혼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세탁소에서는 모든 게 다 깨끗해지고, 음……. 아따 그 말투가 먼디. 말에 꿀 발랐남? 생각 말고 되나케나 말해보드라고. 옷 꼬락서니도 제비인디 말도 제비겉이 하는 거여? 근호는 당황해버렸다. 자꾸만 제비 때의 말투가 나오는 자신에도 놀랐지만 여자의 반응은 더 당황스러웠다. 여자는 근호의 목소리와 말이며 껌벅 죽던 여자들과는 달랐다.

세탁소 주인은 생긴 것과 같이 억척스러운 여자인 듯했다. 근호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가만히 있던 근호가 여자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배달 일을 했었거든요. 신속 정확 뭐 그딴 게 관건이라는 음식점 배달이요. 그래서 이건 무난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도 없고요. 배달일은 제일 오래했고요. 사고 한번 없었습니다. 그런 근호를 바라보던 여자는 느긋이 일어나 세탁소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여자의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근호가 민망함을 느낄 때쯤 작게 웃었다. 곧 다시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수건을 근호에게 던졌다. 땀 닦고. 근디. 근호가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올렸을 때 여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점심은 묵었단까? 근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삐쩍 꼴아가지고. 여자는 중얼거리며 드라이 보일러 옆에 붙어있던 중화요리 스티커를 떼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면서도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서는 할머니를 보고는 더워 뒤지니께 빨리 들어가소! 하고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근호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어렸을 때를 잊어보고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빨갛게 달아오른 근호의 얼굴에서 연기가 날 것 같았다. 여자는 그런 근호에게 젓가락을 던지며 안쪽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점심 묵고 배달 댕겨와야혀. 아파트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응께 길 잃을 건 걱정 하덜 말고. 근호는 잠시 멍해졌다.

 
자장면 한 그릇을 오 분 만에 해치운 근호는 배달에 나섰다. 여자가 남편 것이라 하고 준 반바지와 늘어난 반팔을 입고 너덜거리는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은 왕년의 제비 근호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노란색 컨테이너상자에 연결되어 있는 쇠파이프에 옷을 걸고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하는 오토바이 운전에 조금 삐끗했지만 금세 근호는 능숙히 아파트를 향해 달렸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옷 위에 쓰인 비닐들이 서로를 스치는 소리가 근호에게 은근히 들려왔다. 카바레에서 춤을 추며 미소를 날리던 제비가 하루아침에 이러고 있다니. 근호는 자신이 다시 유흥업소로 돌아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 남자들에게 거하게 한번 맞고 또 노예나 다름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토록 돈을 쉽게 버는 직업은 없었다. 그저 웃고 떠들고 재롱 피우면 뒷주머니에 꽂히는 돈이 얼마인데. 근호는 돈, 돈, 돈 하다 어린 자신이 보았던 아버지를 문득 떠올려냈다. 근호의 아버지는 돈을 그렇게나 많이 버는데도 근호에게 사탕 하나 마음껏 사주지 않았다. 늘 풍족히 바깥을 떠돌았다. 근호는 그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배달을 가야하는 아파트를 지나쳐버렸다.

그렇게 근호는 일주일 째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 이런 저런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근호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나름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탁소와 세탁소에 찾아와 머물다가는 어르신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무언가 따뜻하게 무르익는 냄새를 맡고 있자면 이 일도 나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근호를 하루 종일 바짝 세탁소에 붙어있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여자였다. 여자는 자신의 일에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고 매우 체계적으로 세탁소 일을 해나갔다. 그 모습이 근호에게는 이상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손님의 옷이 들어오면 주소와 이름을 빠르게 종이에 적고 순번을 매기고 옷걸이에 거는데, 그 일에 걸리는 시간은 15초 안팎이었다. 세탁물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옷을 찾아주는 것은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근호는 여자를 보며 유흥업소에서 자신이 몇 번 보았던 생활의 달인을 떠올리기도 했고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저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럴 때면 근호는 배달 더 없냐며 여자에게 투정하듯 물었다.

근호는 여자의 수다를 듣다 옷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배달을 가야지. 배달을 가야지이이. 자신이 아무렇게나 멜로디를 집어넣은 노래를 부르며 근호는 오토바이에 탔다. 그리고 헬멧을 쓰며 흥얼거리는데 누군가 근호를 향해 걸어왔다. 유흥업소에서 뛰쳐나와 도망칠 때 근호를 쫓던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춤 주춤 근호에게 접근했다. 근호는 헬멧을 확실히 잠그고 시선을 앞으로 하다 그들을 보았다. 배달! 을! 가야지이. 배…… 헐. 근호는 그대로 오토바이를 내팽개치고 뛰기 시작했다. 살려면 뛰자. 남자들은 욕을 내뱉으며 근호를 쫓기 시작했다. 놀이터를 지나고 아파트 구석을 지나고 골목을 지나고 수많은 상가들을 지날 때까지 남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근호를 따라왔다. 땀이 흘러들어온 눈을 비비며 뛰던 근호는 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근호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뻗어버렸다. 뒤따라오던 남자들은 멈추어 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근호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일어서려 꿈틀거렸다. 남자들 중 한 명이 천천히 와 근호의 머리채를 부여잡았다. 그리곤 막다른 길이 있는 골목 뒤쪽으로 근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질질 끌려왔을까,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힘이 풀리자 근호는 자동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아 정말 단순하게 말해 뭐 됐다. 근호의 지금 상황이 딱 그렇게 뭐 됐다. 근호는 최대한 웃으며 눈을 깔았다. 전봇대에 부딪힌 이마가 아렸다. 야 인마. 너 때문에 여기 일대를 얼마나 뒤졌는지 알아? 아나 이 새끼.

근호는 고개를 더 팍 숙였다. 너 때문에 우리 형님이 으엄청 화가 나셨어. 뿔 나셨다고! 어? 그 뭐냐 정신적 충격 빡! 남자는 허공에 손을 휘젓다가 머리 위로 뿔을 만들어보였다가 자신의 이마를 한번 쳤다. 사모님이 돈 얼마나 찔러줬냐? 그 돈으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어? 고아 주제에 도망을 치고 있어 어디이. 꼭 부모 없는 것들이 그걸 티낸다니까. 그에 남자의 옆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남자를 힐끔거리며 지는, 하고 중얼거렸다.

야. 계좌번호 주고 갈 테니까 한 달에 이백씩 삼 년 꼬박꼬박 보내. 형님이 손해배상이라는 걸 원한대. 응? 이백? 근호는 빠르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백이요? 아니 어떻게 한 달에 이백을 구합니까? 이백이 누구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이백아아, 이백아아. 저 이제 그 짓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세탁소에서 배달이나 하고 있는……데. 남자들의 눈빛에 금세 시무룩해지는 근호였다. 골목 안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았다. 어째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벽 건너편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과일장사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근호만 죽을 맛이었다. 지금 대드냐? 그래서? 어? 남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근호를 밟기 시작했다.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대던 근호는 그대로 맞아야했다. 맷집이 좋아야 남자라고 했는데. 아빠가 그랬는데. 근호는 자신이 남자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씨 없는 수박이 칠천 원 칠천 원. 아오! 개자식. 속이 꽈악 찬 수박이 칠천 원 칠천 원! 뒤지고 싶냐? 골목 옆을 지나가던 트럭에서 나오는 웃긴 목소리 사이로 남자들의 욕지거리가 섞여 들어갔다.

다행히도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다리를 조금 절고 전봇대에 박은 이마에 멍이 들고 어깨가 뻐근한 정도였다. 근호는 입을 삐죽이며 세탁소로 걸어갔다. 아까 배달할 옷과 오토바이를 팽개쳐버리고 도망쳤던 게 생각이 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머리를 두 손으로 헝클이며 걸어가던 근호가 저 멀리 가는 과일장사 트럭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오! 개자식들. 이백이 땅 파면 나오냐고! 근호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다 곧 생각에 잠겼다. 근호가 제비짓을 할 때 한 달에 벌어들였던 것만 따지면 족히 삼백 가까이는 됐다. 더 많이 벌 때는 사백에서 오백정도. 그렇다면 한 달에 이백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호는 세탁소로 향하던 걸음을 늦추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카바레로 돌아가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대신 자신을 팔아넘겼던 카바레가 아닌 다른 곳으로. 그 새끼들한테는 그냥 몇 대 더 맞고 말지 뭐. 근호는 주머니에 꼬깃꼬깃하게 접혀있는 돈을 꺼내 담배를 샀다. 그런데 사고 나니 괜히 피기가 싫어져 주머니에 고대로 넣었다.

근호가 세탁소 앞에 다다랐을 때 여자가 보였다. 무표정한 여자는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어느새 세탁소 앞에 바르게 세워져 있었고 배달할 옷들은 어디로 갔는지 컨테이너상자에 걸려있지 않았다. 근호는 입술을 잘근 잘근 씹으며 세탁소로 다가갔다. 그때 근호를 발견한 여자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섰다. 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여자는 자신의 앞까지 걸어온 근호를 빤히 바라보다 근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었다. 이마는 워쩌 푸르뎅뎅하당가? 아이고, 뛰다 온겨? 몇 명 때려눕혔쟤. 이마를 부여잡고 있던 근호가 여자를 향해 이번에는 이가 보이게 웃었다. 워째 낯짝이 우리 아들하고 닮아가꼬 불안하다 했는디 하는 짓거리도 똑같당마요. 저녁은 묵었단까?

근호와 여자는 두루치기를 사먹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는 근호가 먼저 들어오고 여자는 늦은 밤이나 돼야 들어오는데 일주일 만에 같이 퇴근을 한 것이었다. 여자는 자신 아들의 방을 근호에게 내주었다. 근호가 잘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왜 자신 아들의 방을 내주나, 내심 궁금했지만 근호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여자의 딸은 며칠 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백을 어떻게 벌어야 하나, 세탁소 배달에 대한 급여는 언제 얘기를 꺼내봐야 하나. 이것만으로 고민을 하던 근호는 밤을 샜다. 사실 그런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했다. 아버지 생각도 한번 했다가 어머니 생각도 한번 했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새벽이었다. 그때 현관이 열리고 곧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출근하는 여자가 오늘도 어김없이 먼저 나간 것이었다. 근호는 몸을 일으키고는 창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결국 오늘 여자에게 급여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등을 벅벅 긁어댔다.

근호는 세탁소 안 구석에 앉아 배달 할 범위의 지도를 바라보다 여자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곧 있으면 배달도 가야했고 여자도 더 바빠질 테니 빨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근호의 입이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근호야. 그때 여자가 대뜸 근호를 불렀다. 근호는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고 대답했다. 예에? 삑사리까지 났다. 이상하코롬. 뭔가 자꾸 손님이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하고, 달브당께. 땅띔하니 다른 세탁소가 생겼나잉. 근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뒷목을 긁적였다. 손님이 줄어드는 건 아예 눈치를 못 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온지 일주일 조금 넘었는데 알 리가 있나. 여자는 다림질을 계속하며 근호에게 배달을 다녀오라 말했다. 근호는 헬멧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근호가 배달을 다녀왔을 때 여자는 밖에 나와 있었다. 근호는 헬멧을 가슴팍에 안고 여자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여자의 얼굴이 붉게 변해 있었다. 근호는 세탁소 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탄내가 났다. 그대로 근호는 와 미친! 이라 외치며 세탁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옷 위에 그대로 놓인 다리미가 옷을 다 태우고 있었다. 근호가 얼른 뒷수습을 하는 동안에도 여자는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여전히 징징거리고 있었다.

동네에 세탁소 체인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자의 세탁소보다 한참 낮은 가격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세탁소 체인점 때문에 동네 앞쯤에 있는 여자의 세탁소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 같았다. 근호는 다시 세탁소 밖으로 나가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며 물 한잔을 건넸다. 여자는 물을 다 마시고 나서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아니, 고 요망한 것들이 워째 기 들어오냐고. 누구 장사 망하는 꼴 뵈고싶은겨? 옆 동네 수연이네 아지매도 무인 세탁소 들어와 가지고 망혔잖여. 아이고 이제 우리 세탁소도 요 앞길이 망길이여! 거의 울상이 된 여자를 보고 있던 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배달을 다녀오고 나서는 꼭 돈에 대해 말해보려고 했건만. 계획이 다 틀어져버렸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 이 상황에서 저어, 저 배달일 돈은……하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근호는 여자를 바라보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여자아이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주인여자의 딸이었다.

어? 딸 오신 것 같은데요. 어느새 훌쩍거리던 여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 세탁소 입구를 바라보았다. 딸은 표정을 팍 구겼다. 야이 가시나야. 어디 이따 와? 저거 진짜!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여자가 던질 것을 찾으려 두리번거리자 딸은 근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곤 밖으로 뛰어갔다. 근호는 멍하니 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밖을 내다봤다. 여자의 딸은 보이지 않았다. 해만 지고 있었다.


근호는 자꾸만 먼저 퇴근하라는 여자의 말에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습기가 가득해 몸이 끈적거렸다. 그때 저 앞으로 여자의 딸이 보였다. 딸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핸드폰을 귀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얼마나 짧은 반바지를 입었는지 스타킹 선이 다 보였다. 근호는 자신도 모르게 멈추어 서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방금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봇대 새끼. 이번에는 잘 가려주기라도 해라. 근호는 전봇대에게 중얼거리곤 숨을 죽였다. 구질구질하잖아. 오빠 장례식 끝나자마자 세탁소 일이 뭐라고, 부랴부랴 일 나가더라니까. 엄마도 아빠랑 똑같아. 오빠랑 나한테 한 번도 관심 안줬던 아빠랑 뭐가 달라. 뭐? 아, 진짜 짜증나. 몰라. 응? 그래. 그래서 오늘 갔는데…… 누구세요? 통화를 하고 있던 딸이 전봇대를 향해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근호에게 물었다. 아 이 전봇대 새끼. 아주 도움이 안돼요. 근호는 전봇대를 한번 발로 차고는 슬쩍 옆으로 나왔다. 여자의 딸이 흠칫 놀라며 핸드폰을 쥔 손을 내렸다. 근호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딸에게 흔들었다. 표정을 서서히 구기던 딸이 근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누가 여자의 딸 아니랄까봐 첫 만남부터 근호가 뒷목을 잡을 말을 꺼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애인이에요? 근호는 헛웃음을 뱉었다. 아저씨가 제비였긴 한데 네 엄마 애인은 아니야.


자 칠백 원짜리. 맛있게 먹어. 근호의 말에 여자의 딸은 근호를 흘겨봤다. 생색은. 근호는 입 꼬리를 올려 웃고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딸도 근호를 따라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었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이십대 초반 남자와 십대 중반 여자의 모습은 누군가 봤다면 조금은 우스울 수도 있었다. 해가 지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시끄럽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빠지고 바람만이 가득 찬 놀이터는 조용했다. 근호가 탄 그네에서 나는 삐걱대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그때 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에 아저씨를 본 것 같은데. 겁나 맞는거. 근호는 여자의 딸을 한번 흘겨보았다. 왜 갑자기 세탁소 일 해요? 근호는 도망치다 발견했어, 라고는 차마 말 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입 물었다. 차들이 놀이터 앞을 지나갔다. 그냥. 근호의 대답에 딸은 근호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세탁소가 싫어요. 아줌마들 비위나 맞추면서 살던 아빠가 집 나가버리고 오빠 죽을 때도 세탁소 하나는 지켜야겠다고 난리 피웠던 엄마도 싫고. 그래서 세탁소가 싫은 건가. 집 잘 안 들어와요 저. 근데 아저씨는 어디 사세요?

근호는 너희 집, 이라고는 이번에도 차마 말 하지 못하고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 안녕히 계세요. 딸이 그네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근호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를 아무렇게나 뱉어버리고는 딸을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제비였어? 근호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네. 아 만약에 엄마가 내 얘기 꺼내도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애인이니까 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 오늘도 집 안 들어갈 거거든요. 그런데 엄마 어디가 좋아요?


그리고 딸은 놀이터 밖으로 나갔다. 야 애인 아니거든. 근호는 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끽 끽. 듣기 싫은 그네 소리가 놀이터에 가득했다.


근호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 그네에 앉아 건너편 세탁소를 바라보았다. 환한 세탁소 안으로 여자가 보였다. 언제 울었는지 화를 냈는지 모를 정도로 여자는 평소처럼 바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근호는 괜히 모래를 한번 툭 쳤다. 돈 얘기를 꺼내봐야겠는데 도저히 그럴 만한 상황이 오지 않았다. 이백을 만약 그 놈들한테 못 준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땅에 묻히면 되는 건가. 근호는 속으로 생각하며 손톱을 물었다. 그러다 신체포기각서에 지장을 안 찍은 게 다행이라며 자신을 위안했다. 그때 세탁소 불이 꺼졌다. 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놀이터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주정도가 흘렀다. 그 동안 사람들은 동네 정 가운데에 생긴 세탁소 체인점을 더 많이 찾았고 심지어 옆 동네 무인 세탁소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여자가 운영하는 동네 세탁소의 손님은 점점 줄고 있었다. 하지만 근호와 여자 전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근호는 배달을 나갔고 여자는 바삐 일을 했다. 세탁소 일이 줄었으면 얼마나 줄었겠냐 하겠지만 딱 봐도 알정도로 분명했다. 그리고 여자의 딸은 딱 한 번 더 왔었다. 어떻게 오빠 방에 근호를 재울 수 있냐며 불 같이 화를 내고 나가버렸지만 어쨌든 한 번 더 오긴 왔었다. 또 그 사이 근호는 여자에게 자신의 돈에 대해 물었고 여자는 근호를 향해 곧 주겠다며 말을 헝클였다.


평소대로 배달을 다녀온 근호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세탁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근호는 여자를 부르며 세탁소 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호는 세탁소 안에 더 깊숙이 들어갔다. 여자는 울고 있는 듯했다. 뒷모습이었지만 울고 있다는 것을 근호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어떤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군복을 입고 환히 웃고 있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여자의 아들이었다. 근호는 그런 여자를 바라보다 세탁소에서 나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여자가 지나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내놓은 의자였다. 근호는 매일 챙겨 나오기만 했던 담배를 처음으로 꺼냈다. 포장을 뜯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근호는 금세 헛 웃으며 다시 담배를 집어넣었다. 라이터도 없으면서. 근호는 다리를 쭉 뻗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몇몇이 그런 근호를 바라보았다. 근호는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갑작스러운 회의감을 느꼈다. 제비 그만두고 깨끗해져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하고 세탁소에 어영부영 들어가긴 했지만 점점 망해가는 세탁소에, 제비남편과 아들을 잃은 주인에, 그 딸에, 자신을 숨 막히게 하는 남자들까지 근호를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근호는 문득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주인의 남편을 상상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도 떠올려냈다. 엄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기 아들이 덩치들한테 쫓기고, 결국 세탁소에서 배달이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뭐라고 할까.

근호는 곧 비가 올 듯 푸르게 변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담뱃갑을 손으로 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오기 전에 밖에 걸린 옷을 안에 들여다 놓아야 했다. 옷을 걷어 비닐까지 씌운 근호는 조심스레 그것을 세탁소 안에 있는 컨테이너상자에 실었다. 그리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섰다. 근호는 한 손바닥을 밖으로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더 컴컴해졌다. 세탁소 옆 상가들은 어느새 문을 닫고 있었다. 근호는 담배를 갑 채로 휴지통에 버렸다.

도저히 담배를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여자의 아들 옷을 입고 나온 근호는 여자를 기다리기로 하며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옷을 벗어 그대로 세탁기에 넣고 싶었다. 그리고 비가 미친 듯이 내려 모든 걸 씻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지은(안양예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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